무대 게임/ 전성희

                  연극, 거울을 보다.

                            – 빅토르 아임의 <무대게임>을 보고

 

                                                                                                                                     전성희

 

작: 빅토르 아임
연출: 까띠 라팽
단체: 프랑코 포니
공연일시: 2014. 3.11-3.30.
공연장소: 게릴라극장

 

 

 

<무대게임>은 작가인 빅토르 아임이 40여 년 동안 연극계에 있으면서 보고 겪었던 일들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코미디이다. 이 연극은 무대 이면의 연극 연습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마치 연극의 자아성찰과도 같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연습이 시작되는 첫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제르트뤼드와 재기를 꿈꾸는 여배우 오르탕스가 극장의 빈 무대에서 오랜만에 재회한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연습시작에 앞서 서로간의 신뢰와 칭찬으로 시작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기질적 정치적 입장의 차이는 이 둘 사이를 점차 험악하게 몰아간다.

제르트뤼드의 심리 저변에는 은근 여배우인 오르탕스에 대한 무시가 깔려 있고 오르탕스는 잘난 체하는 제르트뤼드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그 둘은 조명감독인 바티스트를 향해 속 얘기를 하는 방백의 형태로 객석에 전달한다.

바티스트는 조명실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고 지시에 따라 조명을 밝히거나 낮추는 일을 하며 두 여자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의 역할을 하면서 제르트뤼드와 오르탕스 내면심리의 통로 역할을 한다. 관객은 바티스트를 향해 내뱉는 두 인물의 방백을 통해 그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내면의 은밀함과 분노를 경험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흔히들 뒷담화라고 불리는 인간의 배설 욕구를 객석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극이 진행되면서 두 인물의 이러한 내면의 생각은 다듬어지지 않은 채 서로를 비난하는 무기가 된다. 오르탕스와 제르트뤼드는 무대에 놓인 긴 테이블을 두고 팽팽하게 대치하고 그 대립이 심화될 때 테이블의 가장 긴 길이인 세로 위치에 서는데 그것은 좁힐 수 없는 인간들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극의 초반에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제르트뤼드와 오르탕스는 연습을 위해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제르트뤼드는 오르탕스의 남성편력을 비웃기도 하고 그녀의 머리가 텅 빈 연기에 대해 지적을 하면서 오르탕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오르탕스 역시 제르트뤼드의 오만함에 대해 독설을 뱉어낸다.

연극을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혹은 배우로서의 재기를 위해 극작가 겸 연출가와 배우로 만난 이 두 인물은 감추고 있었던 상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갈등이 증폭되는데 이 갈등은 연출과 배우의 알력 싸움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연극계의 기자와 평론가 나아가 정치권력까지 풍자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무대게임>은 연극계의 속살을 들여다 보는 재미와 더불어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게 해준다.

 

독재정권의 하수인을 애인으로 둔 오르탕스는 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하며 오로지 늙지 않는 것, 그리고 몸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제르트루드는 그런 오르탕스를 경멸하면서도 작가는 신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독재적 인물로 표현된다.

그러나 자기과시가 심한 여배우와 자의식이 강한 작가 겸 연출가라는 인물 설정은 전형적이다. 물론 코미디이기 때문에 인물의 전형성을 비틀어 웃음을 유발할 수 있지만 도식적인 인물의 전형성은 극의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배우 오르탕스 역 김선희의 과장된 연기는 전작이었던 <일곱집 매>와 <세 자매>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를 지우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무대 선반에 얹힌 마네킹의 부러진 팔과 손, 다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동시에 상처 입은 헐벗은 이 두 영혼의 모습을 은유한다.

공연 중이 아니라서 연습을 위해 연출가와 배우가 서있는 무대는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었는데 그것은 <무대게임>에 등장하는 두 인물의 내면의 어수선함을 표현한다.

<무대게임>은 두 여성의 말싸움 같은 대화를 통해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공연시간 내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배우와 극작가 겸 연출가의 파워게임은 오직 언어에 의존해 진행되면서 말맛의 재미가 있는 연극이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정말 이 둘은 연극을 함께 무대에 올릴 수 있을 지 염려가 될 만큼 각을 세우며 무대 위에서 설전을 벌인다.

독재정권의 보안담당자를 사랑하는 오르탕스는 제르트뤼드의 비난과 야유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스캔들을 떠벌리고 연습 중에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다. 제르트뤼드는 그런 오르탕스에 대해 화재를 가장한 사고사를 생각할 만큼 살의를 느낄 만큼의 분노한다. 그렇지만 이 둘은 연극을 무대 위에 올려야 한다.

연극은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 인물들이 만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서로의 생각을 좁혀가는 과정이 연습이다. 이 과정 동안 배우와 스텝들은 연극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인다.

<무대게임>이 연극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에 사는 인간들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마음속에는 타인을 향한 분노나 증오를 숨기고 살고 있으며 때로는 권력자를 향한 맹목적인 추종, 독재에 대해 저항적이면서도 관계를 수직적으로 구축하려 하거나 스스로 독재자의 위치에 서기도 한다. <무대게임>은 인간들의 이율배반적이고 이중적 사고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을 닮아 있다.

 

 

 

 

 

 

 

 

 

 

 

 

연극 <무대게임>은 ‘잘난 체 하는’ 인간들에 대한 풍자를 통쾌하게 이뤄낸다. “죽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는 작가는 글쓰기 행위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진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난해한 작품과 언어를 자기과시처럼 늘어놓는 촌스러움을 보여준다. 연극은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고 30개 언어로 번역된 작품을 쓴 작가의 “어마어마하고 소화하기 힘든 두꺼운 책”을 비꼬며 “그런 책들은 병원에 나누어서 불치병 환자들에게 억지로 읽게 해야 해. 빨리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이라는 한 방을 날린다. 이 ‘적절한’ 펀치를 날리는 주인공은, 정치와 사회에 무심하고 국가정보원장이라는 권력을 가진 남성을 동경하며 늙지 않기 위해 애쓰는, 본능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여배우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제르트뤼드와 오르탕스의 쉴 새 없는 대화의 향연은 연극 <무대게임>만의 재미다. 약 100분 내내 등퇴장 없이 쓰러지지 않고 무대에 서서 끊임없이 말을 쏟아낸다. 자신의 정당성과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말을 뱉어내는 동안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나약함, 두려움 등이다. 동시에 표현의 자유, 평론가들의 허식 등을 고발하는 연극은 그 방식을 분노의 외침이 아닌, 유머로 택했다.

연극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두 여자의 아름답도록 날카로운 심리전을 비추는 조명 스텝 바티스트다. 무대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두 인물의 갈등과 폭로를 관찰한 유일한 목격자다. 연극 <무대게임>은 회자되지 않는, 그러나 꼭 필요한 조명디자이너를 조용히 무대로 불러낸다. 묵묵하면서도 가장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존재다. 

[출처] 프랑스 희곡만의 짜릿함, 연극 ‘무대게임’|작성자 이슈포커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