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실루엣 <8월의 축제>

글_김충일(연극평론가)

 

인간은 차이를 본질로 하는 존재이기에 ‘자기 밖’으로 나가 삶을 펼쳐내고자 하는 욕망과 ‘자기 안’에서 삶을 일구다가 지쳐버리는 욕망 ‘사이의 거리’가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는지 추적하는 작업은 무겁다. 차이를 밝혀주는 구성인자인 ’신체적 가까움‘과 ’공간적 협소함‘은 정신적 거리를 유난스럽게 잘 드러내준다. 하여 인간이 겪게 되는 신체적 가까움은 주변 세계와 유기적인 일체를 구성하면서 삶을 편안함으로 데려가지만 공간적 협소함은 속내 감추기(reserve)를 통해 주변 세계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두게 만들며 삶을 답답함(restriction)으로 이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삶의 주름, 마음의 굴곡, 정신의 켜와 층들은 삶의 무늬가 되어 어찌 무대 위에 흔적으로 남지 않겠는가.

‘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나의 그리움의 늪’에 살면서 ‘너만 곁에 있다면’이라고 소근대는 가는 비가 지짐거리던 그날(2024.04.20). 시내 한 복판에 숨어 파스텔풍의 연초록빛을 발하는 양지(陽地)공원을 지나 우산걸음으로 소극장 드림 아트홀로 찾아들었다. 그 곳에선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 튼튼하게 지켜주고, 씩씩하게 받쳐주는 가족 간의 일상을 풀어낸 극단 실루엣의 <8월의 축제>(작: 이시원, 연출: 이아롱)가 서울에서 초연(2013년)된 후, 처음으로 지역연극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사진 제공: 문익상

 

세상이 차이를 드러내며 변주되고 새롭게 생성되어가고 있다면, 연극 역시 박제되지 않고 흘러가면서 낯선 형식과 구성으로 세상을 비추어야 한다. <8월의 축제>가 담고 있는 세계의 주름은 이렇다. 50대 중반의 도립공원사무소 소장인 광현은 2년 전 요리사였던 딸 주영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일러스트 디자이너인 사위 영민과 사무소 부근 단층짜리 슬라브 주택에서 함께 산다. 광현은 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사위 영민이 안타깝다. 영민 역시 아내 주영이 떠난 뒤 가끔씩 호흡 곤란을 겪는 장인을 생각하면 쉽사리 집을 떠날 수가 없다. 주영을 떠나보낸 광현과 영민은 ‘가족은 삶과 같기에 삶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선언을 선뜻 감내하지 못한다. ‘어떻게 ‘머물다 사라진 사람’을 잊고 얼룩진 삶을 온몸으로 살아내야 할까?‘ 극은 그렇게 삶의 주름 꽃으로 피어난다.

딸이 죽으면 장인과 사위의 관계는 아무래도 ‘사이’가 멀어지는 게 인간사(人間事). 그러나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현실적이며 사실적인 행위로 인해 관객에게 ‘관계의 엇갈림’이 수용(受容)의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선다. 이들은 상대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등 비현실적인 행위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렇고 그런’ 가벼운 일상의 행동으로 관객의 공감을 이끈다. 장인은 사위에게 자신과 딸의 안녕을 위해서 ‘독립’하라고 말하고, 딸은 혼자 남은 남편의 행복을 빌면서도 그가 다른 여자와 다정하게 구는 일에는 질투의 화를 낸다. 사위 역시 장인의 말을 인정하고, 집을 떠나지만 그 선택은 밉거나 섭섭하지 않다. 남겨진 사람이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마음의 굴곡들이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설득력 있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잠시 심심(深深)한 이야기를 건네 보자. 인간이 일상 속에서 겪게 되는 ‘편안함과 답답함’의 롤러코스트를 가로지르며 ‘속내 감추기’가 갖가지 켜와 층을 겪으며 삶의 무늬를 그려내는 시·공간이 가족이다. 이 작품 속 가족들은 ‘자기 삶에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하기에 혼자 있음에 대한 두려움, 신체적 고통이 가져온 외로움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친소(親疏)관계가 가져올 소외감 등을 겪어내면서도 어떤 낭만적 환상을 갖지 않는다. 하여 현실적인 매 순간 순간에 ‘한 끼 밥’을 함께 할 수 있는 ‘사이’를 상처 난 가슴에 품고 산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둘 이상이 하나 되어 ‘같은 밥상’에서 식사하는 것 그게 상식 아닌가. 정말이지 ‘혼자로서의 식사’를 거부할 줄 아는 자유에 다름 아니다. 여기 스토리-라인에 세 인물이 같은 밥상을 차린다.

 

사진 제공: 문익상

 

이 밥상에 앉은 등장인물은 크게 셋인데, 한 집에 살고 있는 장인과 사위 두 산자와 장인의 딸이자 사위의 아내인 산 사람처럼 등장하는 죽은 자 ‘딸(주영)’으로 구분된다. 작품 속에서 ‘주영’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의아하다. 딸이 죽었다는 현실인식 속에서 잊기 싫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속으로 보내줘야 한다는 ‘광현’의 입장과 죽었음 자체도 인정하지 못하는 ‘영민’의 입장의 간극 사이에서 마음의 작용과 실재라는 두 다른 신념의 차이로 그 존재가 드러난다. 곧 그녀라는 존재는 타자의 얼굴을 가진 것이다. 그녀 자체가 현존하지 않을뿐더러 현실에서 그녀를 살아있는 것으로 두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현실속 아내를 잃은 남편, 딸을 잃은 아버지,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고 다시 살아내야 하는 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때 이아롱 연출은 “너(타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나무”를 선택하여 축제의 강에 카누를 만들어 띄운다. 주영에게 이 ‘카누’는 삶의 현장에 ‘살아서는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도구’이자 ‘죽어서는 살아 있을 때 가고 싶었던 곳으로 데려다 주는 친구’로 자리매김한다. 결국 카누는 ‘영민이가 그리는 동화와 맞물려 죽은 주영이를 가고 싶었던 곳’으로 데려다주며 주영이가 아버지와 남편의 곁을 떠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심’을 잡아주는 상징물로 극화되어 흘러간다.

 

사진 제공: 문익상

 

전반적으로 연출과 감정선, 문제의식의 톤이 담백하게 정돈 된 상태로 다가 왔다, 특히 <8월의 축제> 마당엔 심심할 수 있는 작품 속에 긴장을 쌓아가다가 단정하고 다양한 감정을 지닌 음성으로 극의 균형추 역할을 하며 상대배우의 굳어진 힘을 빼준 광현(장지영 분), 눈에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상황을 다소 애매한 표정과 몸동작으로 울림을 준 주영(서다원 분), 부서질 듯 여린 표정과 감정이 지극히 사실적인 솔직함으로 그냥 다가온 영민(김석규 분), 무대가 좁아보이게 만들만큼 극적 에너지의 뿜어내면서도 극의 감상성(感傷性)을 은근히 감추어 극의 재미를 돋우는 축제장으로 이끈 필수(이종국 분), 잔잔한 정경 속에 한 폭의 그림인양 제 자리를 우아하게 지켜 낸 유리(이가영 분). 이 연기자들의 앙상블은 관객들과 한 통 속이 되어 오성별의 꼭 지점에서 빛을 발하며 의미심장한 실루엣을 만들어 내었다.

공연의 마지막에 ‘누군가를 이제는 놓아줘야 할 때’ 아빠와 딸이 요리하는 101가지 인생 레시피’에서 에코처럼 들리는 대사, “나는 어디서 와서 아빠의 딸로 머물다 사라진 걸까요?” 그러나 다른 색깔의 같은 의미를 가진 대사를 반복한다. “아빠는 언제 내가 가장 보고 싶었어?” “언제나. 항상 니가 보고 싶었어. 옆에 있어도 언제나”. 잊은 자와 기억하는 자 사이에서 105분이 흘렀을 때, 무대 속 배우와 무대 밖 관객은 “우리”를 말한다. 기억과 추억에 대해, 앞으로에 대해, 연극이나 삶이 끝날 때까지에 대해, 내가 네 옆에 있을 것에 대해. 먼저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산 자가 먼저 죽은 자에게, “다 살게 돼 있어. 밥은 혼자 먹어도 돼. 니 인생을 살아” 그렇게 “장인과 사위가 요리하는 101가지 해장국 레시피”는 “작은 미소 한 조각과 감동의 눈물 한 방울‘을 선물하며 <8월의 축제> 메인 메뉴로 대박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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