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듣는 연극(12)/ 임야비

음악으로 듣는 연극

– 임야비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12)

13. 폭풍우(The Tempest)  

Miranda: O, wonder! / How many goodly creatures are there here!
How beauteous mankind is! O brave new world,
That has such people in’t!

미란다: 오 놀라워라! / 성스러운 피조물들이 이리도 많네!

인류란 정말 아름답군요. 오 멋진 신세계야,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 The Tempest ; Act 5 Scene 1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편의 대미를 장식할 작품은 ‘폭풍우(The Tempest)’이다. 이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후대의 수많은 작곡가들이 각자의 형식과 개성을 뽐내며 다양한 곡을 남겨놓았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Piano Sonata No.17 Op.31-2 ‘Tempest’이다. 셰익스피어와 베토벤이라는 두 기념비적인 천재들의 조합은 그 만남 자체만으로도 호기심과 흥분이 일어나는 엄청난 예술사적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1802년에 작곡되어 출판된 이 곡의 부제는 베토벤이 그의 제자 쉰틀러에게 “이 곡을 이해하려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 보게나”라고 말한대서 연유되다. 당시 베토벤은 지금까지의 작곡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이 피아노 소나타라고 할 수 있다. 이 소나타의 어두운 긴박함과 극적인 전개는 당시의 청중들에게는 소화하기 힘든 음악적 재료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프로스페로처럼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또 그것을 과감하게 밀어붙여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 냈다.

1악장은 폭풍전야를 암시하는 듯한 어둡고 불길한 서주로 시작한다. 바로 뒤이어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빠른 주제가 피아노로부터 뿜어져 나온다. 감정의 고조와 이완이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이 수직적인 비상과 추락을 반복하며 청중을 난파 직전의 배위로 옮겨 놓는다.

2악장은 1악장의 청각적 피로를 풀어주는 애절하고 환상적인 느린 악장이다. 개연성은 전혀 없지만 이 아름다운 느린 악장에서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의 아름다운 사랑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어울림이 될 것이다. 3악장은 잠시도 쉬지 않고 몰아치는 파도 그 자체다. 왼손의 저음부는 물살의 강한 타격으로, 오른손의 고음부는 끊임없이 일렁거리는 움직임으로 충격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파도를 표현한 이 세상의 모든 음악 중에서 가장 격렬한 곡이 아닐까 싶다.

이 곡은 그 누구에게도 헌정되지 않았다. 곡이 완성되어 출판되면 작곡가의 친구 또는 후원자에게 작품을 헌정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음을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에게 헌정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이 이 곡을 더 흥미롭게 해주는 것 같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폭풍우를 듣고 싶다면 차이콥스키가 1873년에 작곡한 Symphonic Fantasia ‘The Tempest’ Op. 18를 추천한다. 앞서 연재에서 소개했듯이 차이콥스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가지고 총 3곡의 관현악곡을 작곡 했는데, 템페스트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두 번째로 작곡된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햄릿’이다.) 환상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압도적인 인기에 밀려서 연주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섬세한 장면묘사, 관현악으로 펼쳐지는 극적인 전개 그리고 ‘멜로디 메이커’ 차이콥스키의 달콤한 선율만으로도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는 곡이다.

바다의 묘사 –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의 사랑 – 바다의 묘사의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주 시간은 약 25분이다. 바다의 묘사 부분에서는 잔잔한 물결에서 폭풍우가 일어나는 오케스트라의 다이나믹한 표현력이 아주 멋지며, 약 9분 즘부터 등장하는 현의 유려한 선율은 사랑의 부드러움을 정감 넘치게 표현한다. 이 선율이 아득히 멀어진 다음 음악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하며 감동적인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이후 파도의 주제와 사랑의 주제가 서로 뒤섞이면서 장대한 연극의 막을 내린다.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극부수음악 ‘The Tempest’ Op.109 는 대중들에게 거의 안 알려진 음악이지만 연극사는 물론 음악사에서 있어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진귀한 음악이다. 극 상연과 동시에 연주되는 판본인 ‘원전본’은 거의 들을 수 없는 실정이지만, 연주회용으로 편집한 ‘모음곡 본’은 어렵지 않게 음반을 구할 수 있다. 시벨리우스 창작기의 최만년 작품이어서 그런지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조용하고 서늘한 편이다. 원작의 배경인 덥고 습한 아열대기후가 핀란드의 차고 건조한 툰드라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 매우 흥미롭다. 총 20곡이 넘는 전곡을 소화해내기 힘들다면, 무겁고 거칠게 풍랑을 표현한 ‘서곡’, 이슬람 분위기 물씬 풍기는 ‘칼리반의 노래’ 그리고 주인공 프로스페로의 운명과 고뇌를 장중하게 표현한 ‘프로스페로’만이라도 먼저 들어보길 권유한다.

Ariel: Full fathom five thy father lies; of his bones are coral made;those are pearls that were his eyes.

Nothing of him that doth fade, but doth suffer a sea-change into something rich and strange.

Sea-nymphs hourly ring his knell: Hark! Now I hear them, ding-dong, bell.

 

에어리엘: 꽉 찬 다섯 길 아래 네 아버지가 누워 있지.

그의 뼈는 산호가 되었다, 그의 예전 두 눈은 진주가 되었다,

그의 어느 부분도 사라지지 않아, 다만 바다-변화를 겪고 진귀하고 기묘한 어떤 것으로 변할 뿐이지.

바다 요정이 시간마다 울린다, 그의 조종을.

– The Tempest ; Act 1 Scene 2

위에 인용한 부분은 정령 에어리엘이 페르디난드에게 불러주는 대사-노래로, 일명 ‘Full Fathom Five’라 불리며 가장 많이 가곡화가 된 운문이다. 이외에도 5막 1장의 Where the bee sucks … (벌들이 꿀을 빠는 곳 …)와 1막 2장의 Come unto these yellow sands, And then take hands (이 황금빛 모래밭으로 와요, 그리고 손을 잡아요.)가 많이 가곡화 되었지만, ‘Full fathom Five’의 압도적인 인기에는 미치지 못 하는 것 같다.

본 윌리엄스, 로버트 존슨, 프랭크 마틴,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등의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현대작곡가가 에어리얼의 유려한 운문에 아름다운 음표들을 더했다. 이 중 하나를 고르자면 프랭크 마틴의 Song of Ariel을 추천한다. 에어리엘의 주문과도 같은 대사를 혼성합창단의 풍부한 공명을 이용하여 마치 동굴 속 울림을 듣는 듯 아주 신비롭게 표현했다.

But release me from my bands With the help of your good hands:
Gentle breath of yours my sails Must fill, or else my project fails

놓아주십시오, 제 족쇄로부터 여러분의 마음씨 착한 박수로.

부드러운 여러분의 호평이 제 돛을 채워야겠지요 아니면 제 계획은 실패죠.

– The Tempest ; Epilogue

제 12편 ‘템페스트’를 마침으로써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펴보았습니다. 이로써 1 년 넘게 연재해 온 ‘뮤즈를 울린 극작가 – 셰익스피어’의 큰 막을 내립니다. 멋진 마무리 말을 고민하다가 결국 프로스페로에게 맡겨버리고 말았습니다. 프로스페로의 에필로그처럼 멋진 작별인사말을 남기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함과 동시에, 그 동안 ‘음악으로 듣는 연극’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독자 분들에게 크게 고개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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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Stanley Wells, Gary Taylor의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Second Edition’ (Oxford), 번역본은 이상섭 번역의 ‘셰익스피어 로맨스 희곡 전집’(문학과 지성사),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 신정옥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전예원)을 참조 인용하였습니다.

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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