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제, 진정한 연극동네 잔치를 향하여 / 오세곤

 

(제54호 편집인의 글)

서울연극제, 진정한 연극동네 잔치를 향하여

서른여섯 번째 서울연극제가 열린다. 횟수는 시간이 가면 또박또박 올라가니 무슨 자랑거리가 되랴 하겠지만 그간의 서울연극제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번에도 지독한 경험을 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소위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셈이다. 아마도 서울연극제는 명이 무척 길 것 같다.

그러나 모진 세월 견딘 것만 내세운다면 그건 너무 쑥스럽다. 산야에 널린 한낱 소나무도 그 정도 풍파는 견뎌내기 때문이다. 어차피 남들 모두 힘들다며 피하는 연극을 자진해서 하는 마당에 눈이 확 떠질 만큼 잘 하지 못 한다면 그 자체로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스스로에게 최대한 엄격하자는 얘기이다.

예술은 한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불편한 제한이 우리의 창의력을 폭발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서울연극제는 역설적으로 성공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적은 예산에 이만큼 하는 것만도 대단하다고 하는 말은 불필요하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는 말은 예술에 들이대기에는 적절치 않다.

물론 연극이 예술일 뿐 연극제는 예술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이 모였는데 굳이 예술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이상하다. 이에 있어 여러 주장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가장 까다로운 쪽을 택하는 것이 맞다. 한마디로 연극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술 정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서울연극제는 우리 연극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질적으로 우수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찾아 우리 연극의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작품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항시로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이번으로 두 해째 실험해 본 서울연극인대상을 활용할 수도 있다. 1년 내내 많은 사람들이 보고 판단한 결과를 토대로 서울연극제 참가작을 정하는 것이다. 연극인들은 자기 작품, 또는 자기가 뽑은 작품을 서울연극제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설령 자기가 뽑히지 못한 섭섭함이 있더라도 다음을 기약하며, 또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의미를 부여하며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서울연극제는 일부의 잔치가 되어선 안 된다. 이제 서울연극제를 모두가 즐기는 잔치가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모두 함께 지난 열두 달을 결산하고 새로운 열두 달을 시작하는 연극동네만의 새해맞이가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아픔을 딛고 새로 서는 서울연극제가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진정한 잔치를 향해 끝까지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2015년 4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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