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메테를링크

‘펠레아스와 멜리쟝드’

임야비

 

멜리쟝드: 여긴 우리뿐이군요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펠레아스: 이곳은 늘 놀랄 만큼 조용하죠물이 잠자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펠레아스와 멜리쟝드 중 13(유효숙 옮김)

모리스 메테를링크

펠레아스와 멜리쟝드는 우리에게 ‘파랑새’로 익숙한 모리스 메테를링크(1862-1949)가 1892년에 발표한 5막의 희곡이다.

메테를링크는 ‘추상적 연극’, ‘상징주의 연극’으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펠레아스와 멜리쟝드는 이러한 그의 예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플롯은 단순하다. 단테의 신곡 중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아더왕의 전설 중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유부녀와의 금지된 사랑과 비극적 죽음이다.

펠레아스를 연기하는 사라 베르나르

당대, 후대의 많은 이들이 메테를링크의 작품 세계를 ‘추상적’, ‘상징적’, ’무의식적’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설명하는데, 빠른 이해를 위해 단 한마디로 말하자면 ‘애매모호함’이다. 펠레아스와 멜리쟝드에서는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 시간과 공간, 현실과 꿈, 잔혹함과 순진함의 경계가 흐릿하다. 이 ‘흐릿함’을 위해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배경, 인물, 대사, 플롯을 느슨하게 엮는다. 무엇 하나 뚜렷한 것이 없다. 이 극이 일어나는 곳이 어디인지, 언제인지, 멜리쟝드는 누구인지, 펠레아스는 왜 형수를 사랑하는지, 둘은 진짜 사랑하는지 알 수 없다. 두 주인공의 대사는 헛소리, 침묵, 중단된 문장, 아이 같은 미숙한 표현, 집요한 반복으로 점철된다. 플롯은 분절되어 있고, 사건 사이에 명확한 개연성을 밝히기 어렵다. 이쯤 되면 연극인지 시(詩)인지 구별하기 힘들어진다.

펠레아스와 멜리쟝드의 무대 (파리 국립 극장, 1997)

 애매모호함의 강조. 말 자체에 모순이 있는데, 이 역시 메테를링크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애매모호함을 강조할수록 흐릿함은 더 희석된다. 연출과 무대 효과는 희곡의 흐릿함을 희석하여 더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1890년대 상징주의 연출가 오렐리앙 뤼네 포(Aurélien Lugné-Poë; 1869-1940)의 연출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헌에 따르면 뤼네-포는 배우들에게 느리고 부자연스러운 동작과 의도된 무표정, 옹알이처럼 어눌하게 반복하는 발성을 지시해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무대 효과도 마찬가지다. 짙은 안개를 표현한 회색 배경, 인물이 겨우 분간될 정도의 희미한 조명, 무대와 관객 사이에 반투명막 설치, 단순화된 소품으로 ‘뿌연 이미지’를 창출했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당시 공연계와 예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기존 음악의 탄탄한 구조와 명료한 이미지에 지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작곡가들에게 펠레아스와 멜리쟝드의 흐릿함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원작의 신비한 이미지 때문에 흩어진 화성과 여유로운 표현이 가능했고, 느슨한 구조 덕분에 음악이 들어갈 빈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동시대의 프랑스 작곡가 포레(1898)와 드뷔시(1902), 독일의 쇤베르크(1903), 핀란드의 시벨리우스(1905) 이상 4명의 작곡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메테를링크가 만들어낸 안개 속에 울림을 얹었다.

(좌로부터) 가브리엘 포레, 얀 시벨리우스, 아놀트 쇤베르크, 끌로드 드뷔시

사실 클래식 음악계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펠레아스와 멜리쟝드’라고 하면, 위 네 명의 작곡가의 네 곡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곡의 모티브가 되는 원작자 메테를링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령 원작자를 안다고 하더라도 희곡을 읽거나 연극을 관람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각기 다른 네 곡이지만, 감상자의 청각적 심상은 ‘좋긴 한데 뭔가 모호하다’, ‘집중해서 듣기 어렵다’,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다 듣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로 한결같다는 점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음악마저 흐릿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네 곡 중에서 다시 들어 볼 의향이 있는 곡을 물으면 거의 모두가 포레와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꼽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쇤베르크와 드뷔시의 음악에 비해 그나마 또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애매모호가 뭐야?’라고 물으면 대답하는 방식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애매모호(曖昧模糊)는 말이나 태도 따위가 희미하고 흐려 분명하지 아니함을 뜻해’라고 명료하게 ‘애매모호’의 뜻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애매모호라… 그걸 설명하기가 애매하고 모호하네… 뭔가 알쏭달쏭하고 흐지부지하고… 잘 모르겠고 망설여지는 느낌? 있는데 없는 거 같고, 없는데 있는 거 같은? 어질러진 방 같고 뭐 대충 그런 거?’라고 얼버무리는 것이다. ‘애매모호’를 애매모호하게 설명함으로써 그 이미지를 ‘지각’시키는 방식이다.

애매모호를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작곡된 음악이 포레와 시벨리우스의 펠레아스와 멜리쟝드이고, 애매모호를 ‘지각시키는 방식’으로 작곡된 음악이 쇤베르크와 드뷔시의 펠리야스와 멜리쟝드다. 그래서 ‘덜 흐릿한’ 포레와 시벨리우스의 곡에서는 어두운 무대라는 시각과 슬픈 멜로디라는 청각이 주로 포착되고, ‘더 흐릿한’ 쇤베르크와 드뷔시의 곡에서는 애매한 이미지와 모호한 비극이라는 난해한 인상만 남는다. 공교롭게도 포레와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비교적 짧고, 쇤베르크와 드뷔시의 음악은 매우 길다. 표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작곡된 포레와 시벨리우스의 ‘덜 흐릿한’ 음악을 살펴보자

‘근대 프랑스 음악의 아버지’ 가브리엘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쟝드는 원래 극부수음악이었다. 그는 이 중 5곡을 떼어내 제자와 함께 재편곡했는데, 원곡은 거의 연주되지 않고 추려진 모음곡이 주로 연주된다. 1. 전주곡 – 2. 펠레아스 – 3. 멜리쟝드의 노래 – 4. 시실리엔느 – 5. 멜리쟝드의 죽음. 총 5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느리고 애수 띤 음악들은 이지-리스닝(easy-listening) 곡들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고, 듣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 특히 애절한 멜로디로 유명한 시실리엔느(Sicilienne)는 듣는 이의 마음을 추억과 애수로 이끄는 묘한 분위기가 일품인 곡이다.

얀 시벨리우스의 펠레아스와 멜리쟝드 역시 포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극부수음악이었다. 메테를링크로 대표되는 상징주의 연극의 바람은 북유럽까지 상륙했고, 프랑스어 원작은 번역 작업과 동시에 상연 준비에 들어갔다. 극장은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에게 극부수음악을 의뢰했고, 그는 작업하고 있던 다른 곡들을 전부 제쳐두고 이 곡에 매달렸다. 그래서 완성된 초기 형태는 전주곡과 간주곡 7곡, 멜로드라마 2곡, 가곡 1곡으로 총 10곡이었으나, 나중에 오케스트라 연주용 모음곡(총 8곡)으로 재편성했다. 시벨리우스 음악 특유의 ‘차가운 음침함’이 메테를링크가 구현하고자 했던 몽환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수작이다. 시벨리우스는 담담한 마음으로 옅은 수채화 같은 원작의 비극 위에 음악적 붓질을 더 했다. 특히 제 1곡 ‘성문에서’와 제 4곡 ‘세 장님 자매’ 그리고 제 5곡 ‘파스토랄(전원곡)’은 당장 연극 음악으로 써도 될 정도로 세련된 음악이다.

이제 ‘지각시키는 방식’으로 작곡된 쇤베르크와 드뷔시의 ‘더 흐릿한’ 음악을 살펴보자.

아놀트 쇤베르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쟝드는 4관 편성에 연주 인원만 100명이 훌쩍 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시다.

현대 음악의 개척자 쇤베르크가 본격적인 무조주의(無調主義)로 빠지기 전인 1903년에 완성한 곡으로 아직 바그너,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선배 작곡가들이 물려준 후기 낭만적 요소가 곳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파격적인 작곡법으로 완성된 그의 무조 작품들보다는 덜 난해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쇤베르크 작품 안에서만 유효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비교적 ‘덜 난해할 뿐’이지,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다.)

음침함과 모호함으로 일관된 긴장과 이완이 정신없이 교차한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연극의 배경이 되는 시각적 이미지나 비극적인 사랑이라는 이야기적 요소를 또렷하게 떠올리기 힘들다. 인내심을 가지고 곡을 다 듣고 나면 흐물흐물한 이미지 덩어리만이 머릿속에 남게 된다. 난해한 음악을 통해 극의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강조한 쇤베르크의 의도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6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고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쟝드’ (지휘; 피에르 불레즈, 연출; 페터 슈타인)

 끌로드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쟝드는 대본과 동일한 가사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모호하며 연주 시간은 무려 2시간 반에 육박한다.

바그너의 강렬한 예술이 온 유럽을 휩쓸던 19세기 말, 드뷔시는 바그너의 총체극을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적 어법으로 가극(drama lyrique)을 만들고 싶어 했다. 1893년 5월 17일, 메테를링크의 연극을 본 드뷔시는 자신의 오페라를 위한 완벽한 대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드뷔시는 메테를링크와 그의 작품에 대한 벅찬 만족감에 대해 ‘사물을 반 정도만 이야기하여, 그 꿈에 내 꿈을 접목해주는 시인. 때와 장소도 한정되지 않는 등장인물을 구상하고, 클라이맥스를 머리에서 누르지 않고 그 이상의 예술을 가지는 것, 작품의 완성을 자신에게 맡겨주는 시인’이라고 기록했다.

드뷔시는 메테를링크를 만나 음악화를 허락받고 곧바로 작업에 착수하여 1895년에 제 1고를 완성한다. 이후 초연을 위한 악보 수정 작업을 거쳐 1902년 최종본을 마무리 짓는다.

 보통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는 영상 없이 음악만 들어도 충분하지만, 이 곡만큼은 꼭 영상물로 보기를 추천한다. 프랑스어에 아무리 능통한 사람일지라도 음악만 듣는다면 십중팔구 2막 시작 전에 잠들 것이다. 섬세한 작곡가 드뷔시는 원작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대사 사이에 음악을 너무 살금살금 삽입했다. 애매한 극에다 모호한 음악을 부어 더욱 옅게 희석한 느낌이다. 가뜩이나 싱거운 국에 물을 잔뜩 부어 맹탕이 되었으니 소금을 쳐야 국이 된다. 그래서 이 오페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각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드뷔시의 유일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쟝드’는 프랑스 현대 오페라사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만, 그 고귀하고 난해한 상징성(애매모호함) 때문에 바그너의 악극만큼 자주 공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술과 문학의 치밀한 결합에만 집중했던 바그너의 정반대 편에서, 상징적이고 느슨한 미학을 추구했던 메테를링크와 드뷔시의 시도를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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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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