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의 패러다임과 미래 방향 모색

오세곤

이 글은 2021년 11월 24일 화성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회 예술지원센터 연구포럼> “지역과 예술인, 상생을 위한 새로운 도약”에서 발제한 원고를 바탕으로 약간 손본 것이다. 비록 화성시라는 기초자치단체를 염두에 둔 제안이지만, 기초는 물론, 광역지자체, 나아가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깊이 고려할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게재한다.

1. 들어가며

사진 출처: 언스플래쉬

예술교육은 그 대상에 따라 전문가 교육과 일반인 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문가 교육은 엄격하다. 최소한의 기준점에 도달하지 못 하면 아무리 애를 썼어도 결코 의미 있는 결과로 인정받지 못 한다. 반면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은 개인에 따라 각각 다른 기준점 설정이 필요하다. 또한 전문가들과 달리 장르 간에 벽도 상당히 느슨하고 일상의 문화와 쉽게 결합할 수 있으며,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요시한다.

한편 전문가 교육은 신진 예술인 양성 교육과 기성 예술인의 재교육 내지 역량 강화 교육으로 나눌 수 있으며, 통상 문화예술교육이라 하는 일반인 대상 예술교육은 크게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 구분한다.

현재 신진 예술인 양성 교육은 거의 대학에서 담당하고 있다. 과거에는 장르에 따라 대학과 별 상관없이 인력 배출이 이루어진 경우도 꽤 있었지만 국민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 입학 정원의 약 10%를 예술 관련 전공이 차지하는 상황이 되면서 연령대가 젊을수록 관련 전공을 졸업하지 않은 예술인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워졌다.

기성 예술인의 재교육은 우선 역량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기량이란 한 번 습득하면 계속 유지되기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거나 둔해지다 결국 소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예술 전공 졸업생이 시간이 지나도 학교에서 훈련받은 정도에 머무른다면 결코 좋은 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예술인이란 꾸준히 자기 기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인데, 여기에는 기존 기량의 깊이를 더 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능력을 더 하는 것, 즉 폭 내지 넓이를 확장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하겠다.

한편 문화예술교육은 법에서 정확하게 개념을 구분해 놓고 있는데, 학교문화예술교육의 경우 “초중고 학교와 유치원 및 어린이집에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행하여지는 문화예술교육”으로 명시하고 있으므로, 그 외에는 모두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대학교도 사회문화예술교육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2. 예술교육의 현황

1) 신진 예술인 양성 교육

사진 출처: 언스플래쉬

대학 내에서 예술 전공의 위상은 대체로 낮은 편이다. 특히 취업률을 대학 평가의 중요한 지표로 삼기 시작한 뒤부터는 거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정부는 현장의 반발에 마지못해 예술계열의 취업률은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 공언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구조 조정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는 게 예술 전공들이다.

그러니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는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 하면 최소한의 교육 효과를 이루기 위한 교육과정의 세밀화, 교수 인력의 확충, 시설 및 장비의 개선 등은 모두 예산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평가에 도움도 안 되는 예술 전공에 예산을 투입할 의지를 가진 대학은 거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니 대학은 결국 졸업장이라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제도일 뿐 실제 예술적 기량을 충분히 갖춰서 내보내는 일은 거의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예술 현장에서는 대학과 졸업생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장이라도 대학을 막 졸업한 신진 예술인들에 대해 예술인으로 활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추가 훈련을 실시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어야 할 텐데 하루하루 대부분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는 처지에서 그럴 만한 여력은 거의 없다. 그래서 실제 활동을 통해 조금씩 쌓여가는 자연적인 기량 획득에 맡겨 놓고 있을 뿐이니 개인 간 편차는 물론 한 개인 내에서도 부분적 결여와 역량 간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2) 기성 예술인 재교육

예술은 원래 비효율적이다. 작품에 대해서건 자기 기량에 대해서건 예술인들은 티끌만큼 나아지기 위해 태산만큼의 힘을 쏟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예술인들은 현재 상태에 결코 만족하지 못 하는 존재이다. 조금이라도 맘에 안 들면 과감히 망치로 내려치는 도공의 모습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그렇게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집착이야말로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꾸준한 자기 계발을 당연시한다. 자기 계발은 혼자 스스로 하는 훈련도 있겠지만 새로이 뭔가를 배우는 것도 있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안 좋다보니 기본 생계를 위해 많은 시간을 예술 아닌 일에 투입해야 한다. 즉 돈을 들여 뭔가를 배우기는커녕 최소한의 자기 훈련조차 시간이 없어 못 할 처지인 것이다. 결국 불만족한 상태의 기량으로 불만족한 상태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만다. 그 불만족은 예술인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자기합리화 내지 타성이라는 함정에 빠지도록 한다.

3) 학교문화예술교육

2005년 2월 제정된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문화예술교육의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제3조(문화예술교육의 기본원칙) ①문화예술교육은 모든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창조력 함양을 위한 교육을 지향한다. ②모든 국민은 나이, 성별, 장애, 사회적 신분, 경제적 여건, 신체적 조건, 거주지역 등에 관계없이 자신의 관심과 적성에 따라 평생에 걸쳐 문화예술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는다.

현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고 있는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중심은 역시 8개 분야 학교 예술강사 파견사업일 것이다. 그런데 위의 “전 국민의 권리” 원칙을 학교에 적용한다면 적어도 모든 초중고와 유치원, 어린이집에 예술강사가 파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초중고 중 약 80%에만 예술강사가 파견되고 있으며,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간간이 시범사업 정도로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초중고의 80%라는 수치도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 결코 모든 초중고생의 80%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강사가 출강한다고 그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정확히 살펴보자면 평균적으로 초중고생 중 약 3분의 1 미만의 학생들이 1주에 1시간 수업을 받는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동아리 수업이라든가 하는 경우처럼 주당 서너 시간을 잡는다면 혜택을 보는 학생 수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 적어도 1주일에 2시간 씩 모든 초중고생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하려면 최소한 지금의 6배 내지 10배 정도로 사업의 규모를 확대해야만 한다.

4) 사회문화예술교육

현재 사회문화예술교육은 학교문화예술교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서 취약 계층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위의 “전 국민의 권리” 원칙에는 안 맞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특별히 소외계층을 배려하라고 하는 조항을 둔 것으로 보아 예산 상황 등 여건에 따라 우선순위를 둘 수도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제5조의2(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③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저소득층, 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에게 균등한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보장하여 문화예술적 소질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수립·실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대상을 선별하는 것은 한시적으로 그쳐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교육이 본격화된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정상화하고자 하는 특별한 의지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3. 예술교육의 비전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반성하며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물리적 토목이나 건축 중심이 아닌 문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는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런 저런 명목으로 예술을 활용하지만 사업이 끝나면 예술도 예술인도 모두 떠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지적한다.

사진 출처: 언스플래쉬

물론 어떤 사회의 문화는 그 구성원 전체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핵심이자 지향점으로서 견인 동력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 다시 말해 예술 없이 튼튼한 문화가 형성되기는 어렵고, 그래서 예술인들이 정착하여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예술인들이 어떤 지역에 계속 머물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거주 지원, 창작 지원, 발표 지원 등, 공간 및 예산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으로 예술인들이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지원도 필요하다. 이에 더해 예술인들이 문화예술교육자로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앞서 문화 형성의 핵심 동력이라는 예술의 역할이 훨씬 더 원활해질 것이다.

1) 예술인 재교육 지원

무엇보다 예술인들을 위한 체계적인 재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과정만 열어 놓는다고 생계에 허덕이는 예술인들이 쉽게 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사실 예술인만 재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도 학교에도 연수가 있는데 대부분 목표가 역량 강화이므로 성격이 동일하다. 그런데 회사원이나 교원들의 연수는 근무로 인정받고 따라서 급여도 있고 심지어 연수비까지 추가되는 경우도 많다.

2002년 연극강사풀 사업을 시작할 때 교원 연수를 모델로 참여 연극인들에게 연수를 위한 교통비와 일비를 책정했었다.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좋은 전례가 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2005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모든 예술강사 사업을 관장하게 되면서 소위 형평성이라는 이유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단언컨대 지역이 예술인들의 진정한 거주와 창작의 터전이 되려면 역량 강화를 위한 예술인 재교육 과정에 마치 회사원이나 교원처럼 연수비를 지급하는 것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덧붙이지면 재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고정된 아카데미 형식으로 예술인들이 선택해 교육을 받을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예술인 스스로 내용을 설계하는 것도 지원 가능해야 하며, 일종의 바우처 제도가 있어서 고정된 아카데미가 아닌 외부의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

2) 학교 상주 예술인 제도

초중고에 예술인이 상주하면 단독 또는 협력 교육자가 될 수도 있고 학교 내 모든 예술 관련 부분에 대한 컨설턴트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이 제도는 예술강사가 파견되지 않거나 파견돼도 극히 일부 학생들만 혜택을 보는 경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계속 늘고 있는 유휴교실을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아울러 대학에도 예술인들이 상주한다면 부족한 전공 교수 인력 부분을 보완할 수도 있고, 전공 학생들과 다양한 공동 작업도 가능할 것이며, 일종의 사각으로 되어 있는 대학 내 일반 학생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읍면동 연고 예술인(및 단체) 제도

가능한 한 많은 주민들이 예술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아주 가까이에서 늘 예술인이나 예술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들의 작업 결과로 나오는 예술작품들은 주민들이 감상하며 즐기는 대상이 될 것이고, 또한 그들이 직접 주민들의 예술 체험 활동을 돕는 문화예술교육자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며, 더욱 적극적으로는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문화를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대한민국 헌법 제 22조는 예술과 예술인이 국가와 사회의 필수 구성요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22조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②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모든 국민이 예술의 자유를 누리도록 하려면 맘만 먹으면 예술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체험활동을 하려 할 때 쉽게 도와줄 예술인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즉 앞서 제안한 몇 가지 방안들은 예술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물론 위의 방안들 중에는 기초단위 지자체가 실행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방향을 정해 놓고 조금씩 쌓아가고 다가간다는 전제 아래 어떤 것은 지자체 스스로의 힘으로, 또 어떤 것은 중앙 정부나 광역 지자체를 설득함으로써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예술인들이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면 자연히 주민 모두 행복해지고 결국 지속발전이 가능한 튼튼한 문화가 형성된다는 확신을 갖고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주기를, 그래서 전국의 모든 지역이 따를 만한 확실한 모범 사례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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