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와 꽁치

황윤동(문화예술연구소「점·선·면」소장, 사)문화창작집단 공터다 대표)

• 고등어: 고등엇과의 바닷물고기. 몸은 기름지고 통통하며 등에 녹색을 띤 검은색 물결무늬가 있고 배는 은백색이다.

• 꽁치: 꽁칫과의 바닷물고기. 몸의 길이는 30cm 정도이고 옆으로 약간 납작한 원통형이며, 등은 검은 청색, 배는 은빛 백색이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어릴 적 일이다. 내 생애 첫 심부름은 고등어를 사 오는 일 이었다. 시장 좌판에 널린 여러 생선들 가운데 은빛과 함께 푸르스름한 빛깔을 내는 놈을 가리키며 나는 생애 첫 임무 수행을 위한 대사를 호기롭게 날렸다.

“저 고등어 얼마예요?”

“꽁치?”

주인아주머니의 짧고 묵직한 그 한마디는 어린 나에겐 혼란이었다. 흰색의 배… 검푸른 등… 고등어가 아니라고…? 그리고 이내 아주머니가 가리킨 비슷한 색깔을 띤 통통한 생선으로 시선이 다다르자 김창완 아저씨의 노랫말이 내 귓가에서 반복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고등어를… 고등어를… 고등어를…’ 혼란은 창피함이 되어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생애 첫 임무는 실패했다.

고등어와 꽁치를 구분할 줄 아는 어른이 된 후 이날의 사건을 떠올릴 때가 종종 있다.

좋아하는 연극이 직업이 되면서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입에 풀칠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대다수의 연극인들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는 헌법 제22조 제2항은 여는 직업과는 다른 우리 직업의 고결함과 창작자의 자부심을 지지해 준 약속이고 국가는 우리의 백그라운드이다.

문화 기본법(2013.12 제정)이 제정되면서 문화 법률은 ‘문화예술’, ‘문화산업’, ‘문화유산·전통문화’, ‘국어의 발전과 보전’ 이렇게 4개의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을 대표하는 하위 기본법으로 구분하여 각 분야의 정책을 설계하고 지원하고 있다. 우리 연극에 해당되는 문화예술진흥법(1972.8 제정, 2022.9 개정)은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하위 기본법으로 ‘문화 예술의 진흥’, ‘문화 복지의 증진’, ‘지역 문화의 활성화’, ‘국제 문화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해당 법률들을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지역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지역문화진흥법(2014.1)이 제정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시민’이 전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문화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은 문화 복지의 개념을 탑재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예술은 ‘기능’한다는 논리로 예술 ‘교육’이 ‘창작’의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또한 ‘다양성’은 장르 간의 융합과 확장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기초 예술의 토대는 부실해지기 시작하고 공동체와 협업의 대표적인 인큐베이터인 극단은 지속 가능성에 도전을 받게 된다. ‘청년’ 정책이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면서 그들에게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를 지급하는 사업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창작의 주요 기반이 되는 극단은 지원은 받는 것 같으나 체질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게다가 예술을 경영해야 하는 새로운 임무는 창작 못지않게 중요한 우리의 의무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백그라운드는 우리에게 절대로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우리를 위해 언제나 노력하였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자신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부응하기 위해 예술가인 시민으로 백그라운드의 수혜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화 예술 ‘진흥’은 어렵고 복잡하고 세련된 언어로 치장된 수혜의 의미가 짙은 ‘지원’ 사업으로 (연극) 예술인들을 구제하고 있다. 그리고 창작과 향유는 ‘시민’의 이름으로 경계를 허물고 있고 우리 (연극) 예술인은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예술가인가 시민인가’

2023년 판 ‘고등어와 꽁치’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창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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