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 치는 예술인 복지

글_채승훈 (연극연출가)

 

최근에 무척 안타까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대학로와 망원동 두 곳에서 운영되던 ‘예술인 자녀 돌봄센터’가 2024년도 예산 지원중단으로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돌봄센터는 약 6억 원의 예산으로 2014년 자녀 돌봄에 어려움을 겪던 실연예술인들에 대한 복지 지원으로 2014년도에 시작되어 성과와 호응이 좋아 2017년도에는 망원동에 센터 하나를 더 설립하여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2024년 정부 지원예산이 전액 삭감되어 이제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출산 회피 문제 등등의 사회적인 문제 인식에도 완전히 역행하는 이런 결정에 대해 관련 예술인들도 매우 유감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정부가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 문제를 내세우면서 지원금 폐지를 주도했다고 전해진다. 한마디로, 예술인들한테만 뭐 이런 특혜를 주는가 하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분들의 생각으로는, 다른 돌봄센터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데, 야간에도 돌봄이 필요한 공연예술인들의 특성을 전혀 모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지역연극인 지원센터 지원금도 전액 삭감되었고, 특히 예술인 강사 지원금도 절반이나 삭감되었다고 한다.

 

돌봄센터, 예술인 강사에 대한 지원은 향유자보다는 예술인 지원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니 예술인들에 대해서 억하심정을 가지지 않고서야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실제로 문체부 전체예산은 지난해와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런 지원금을 삭감한다? 도대체 그 저의를 알 수 없다. 필자는 지난달 글에서, 노령에 접어든 전업 예술인에게 일정액의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복지지원책을 제안한 바가 있는데, 최근의 이런 사단들을 보면 그런 제안이 얼마나 요원하고 허망한 제안인지 실감이 안 날 수가 없다.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줬다가 도로 뺏는 것 같은 이런 처사에 그냥 야비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국가가 갑작스럽게 무슨 재난 상황이라도 닥친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들쳐 봐도 그런 정도는 아니다. 국가 전체예산이나 관련 부서 예산도 거의 그대로이다. 백번 양보해서 나라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해도 그 우선적인 허리 졸라매기의 대상이 예술 사업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과거 전쟁 후에 파괴된 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을 해야 할 대상으로 공연장을 우선했다는 유럽 어느 국가의 예가 있다. 그것도 벌써 80년 전의 일이다. 말은 항상 세계경제순위 10위권이니 뭐니 하지만 하는 행태는 미개하지 않을 수 없다.

 

자료사진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문화입국이니 문화부흥이니 하면서 거창하게 공약을 내세운다. 문화 행사에 얼굴들을 내밀면서 지원을 약속한다. 청년예술인들과 대화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공연장을 찾고, 축제에 청바지를 입고 나와서 장밋빛 공약들을 마구 던진다. 그중에서도 한결같이 해대는 말들이 ‘가난한 예술 현장을 잘 안다, 그들의 창작지원, 복지 지원 틀림없이 하겠다’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완전 배반의 길을 간다. 요즘 말로 완전 ‘생까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또다시 선거 때만 되면 여전히 같은 짓거리를 반복한다. 예술인들을 바보로 알고 우롱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말 예산 시즌이 되면 이제 정치인들은 슬쩍 모른 척하고 관료들이 나서 예술인들을 박대하기 시작한다.

 

뭔가 지원책을 제시하면 그들이 항상 내세우는 논리들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예술인은 프리랜서이기에 국가가 나서는 게 맞지 않는다’이다. 일반 직장인들은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회사에서 그들에게 임금도 주고 보험도 도와준다. 하지만 예술인은 소속이 없는 자유직이다. 예술인들은 그러므로 국가가 회사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고 정부는 그런 견해는 곤란하다고 한다. 이 문제로 항상 충돌한다.

하지만 그런 난관을 뚫고 결국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고, 예술인 복지에 있어 국가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더욱 발전해도 부족한 예술인 복지체계가 10년도 지난 이 시점에서 도리어 후퇴하는 지경이 되었다. 왜 후퇴하는가? 줬다가 뺏는 것은 도대체 무슨 처사인가?

 

그들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논리는 ‘형평성’의 문제이다. 사회의 다른 곳도 어려운 데 예술인들만 이런 복지 혜택을 주는 게 맞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도 매우 허술하다. 이미 예술인 복지가 출발이 되었으면, 이어서 다른 분야도 시행하는 일이 필요한 거지, 다른 곳은 시작할 의논조차 하지 않고, 도리어 그나마 어렵게 시작된 예술인 복지를, 다른 곳과의 형평성 운운하면서 도리어 중단하려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처사 아닌가? 세상이 발전하고 나라가 발전하면 도리어 복지정책도 진전해야 맞는데, 10년이 지나도 다시 또 비슷한 논리로 퇴행시키려는 태도, 이거 한편으론 사회적 직무유기 아닌가?

 

사회의 곳곳에 예술인들과 비슷하게 어려운 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보면 예술인들이 복지를 내세우는 게 한편으론 미안한 감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분야가 예술계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강도는 예술인들이 제일 으뜸이다. 경제적인 수입이 예술인만큼 어려운 분야는 사회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들에 대한 편견이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 사회적 편견은 방송이나 언론의 과다한 부풀리기와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송에서는 항상 잘나가는 예술인들을 조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연극인이라고 하는데 수십,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도대체 어느 연극인이 수십, 수백억의 자산을 연극만을 해서 보유할 수 있을까?) 천문학적인 개런티를 받기도 한다. 성공한 대중예술인들은 좋은 집과 차를 자랑한다. 순수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대학교수가 되기도 하고 잘 팔리는 창작품으로 인해 땅도 사들여서 전국 지역 곳곳에 갤러리를 만들기도 한다. 언론이나 방송은 그런 사람들을 주로 조명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은 예술인들도 꽤 괜찮은 삶을 사는 거로 착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예술계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최고로 달해있다. 상위 10%가 전체 수입의 99를 가져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장르가 다 그렇다. 90% 이상의 예술인들은 사회의 가장 낮은 구덩이에 떨어져 있는것이다. 아무리 K문화가 잘되고 플랫폼들이 늘어나고 창작 편수가 늘어난다 해도, 상위 10%에 대한 수익의 쏠림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하위 90%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더 심해진다. 이런 비틀어진 구조를 완화 시킬 생각을 위정자들은 결코 하지 않는다. 예술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그 가파른 구덩이에서 기어 올라오라고 한다. 그런데 예술계의 속성상 결코 혼자의 힘으로 그곳을 기어 올라갈 수가 없다.

 

요새 사회에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청소년기의 희망을 찾아서 직업을 택하는 경우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어렵더라도 누구나 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조금씩이라도 변화시켜나가는 게 올바른 정치이며 정책 아닌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부와 명예를 이루는 게 얼마나 귀중하고 부러운 일인가?

 

‘네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니 가난하건 말건 네가 스스로 책임져라’하고 내팽개치기만 하면, 결국 청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죽을 때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겁을 집어먹게 되고 원하지 않는 길을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예술과 같은 직업은 회피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과거 대학에서 학생들 면담을 해보면 1학년 때는 누구나 예술 현장으로 간다고 하지만 3학년쯤 되면 모두 몸을 사린다. 현장 나가면 굶어 죽는다는 생각으로 겁을 집어먹는 것이다.

만일 예술이 직업으로도 인정 못 받고, 형평성에서도 밀리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편견에 밀려서 결국 지원자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예술은 소멸할 것이다.

예술이 소멸하는 사회,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 안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없지 하면서 방치하고 당연시할 것인가?

 

예술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국가는 예술인들을 보호해줘야 한다.

 

2 thoughts on “뒷걸음질 치는 예술인 복지

  1. 실제 예술인자녀돌봄센터 사진은 아닌거 같은데 사진의 출처나 자료사진 이라는 설명이 붙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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