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배우 장용철이 만난 풍경_ 연극과 사람 6호

글_장용철 (극단 작은신화, 좋은희곡읽기모임)

 

 

하지만 그건 진심이었을 거야!

 

아주 오래 전이다. 한 여름이었다. 무더웠다. 혜화역앞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우연히 연출 선생님을 마주쳤는데 대뜸 자네 요즘 한가한가? 시간 되면 나랑 작품해보세! 하셨다. 네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주십쇼!

 

성대앞 옥탑방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번엔 K선생님이셨다. 캐스팅 섭외였다. 공연 기간이 3개월이나 되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먼저 약속된 공연이 있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정신이 들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출연하는 장기공연에, 작품은 고전적으로 묵직하고 현대적으로도 발랄하며, 스토리가 괘씸하게 용기있고, 연극적으로는 비언어적인데 사실은 언어적이며 비구성적인데도 플롯이 참 야릇하였다. 그리고, 하물며, 전화기 저쪽에서 들려왔던 개런티 액수를 떠올려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젖은 머리카락들이 다 주뼛거렸다. 곧바로 혜화로터리쪽 극단 사무실로 달려갔다. 선생님! 저 그 배역 하겠습니다!

 

왜 작업은 없을 땐 없고 들어올 때는 왕창 들어오는가. 먼저 들어온 작품은 아직 대본도 받지 않은 상태이고, 같은 날 1시간 동안에 들어온 두 작품을 코앞에 두고 우물쭈물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

 

K선생님을 만나서 참여하기로 하고 곧바로 C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제가 그 작품을 못하겠습니다!

 

자초지종을 다 듣지도 않으시고 흔쾌히 말씀하셨다. 당연히 그 작품 해야지! 이건 개런티도 적고 공연도 단 3일인데 배우라면 당연히 돈도 더 많이 받고 좋은 작품에 출연해야지 나는 얼른 다른 배우를 찾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 작품 가서 잘 하라!

 

석달 후, 그 화창한 시월에는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옥탑방에 살고 있던 나는 더 넓고 근사한 옥탑방을 월세로 이미 계약한 상태였다. 마음이 급했다. 급했지만 황홀한 행운이 온 거였다. 아내 될 사람한테 전화를 했다. 야홋! 하늘이 우릴 돕는구나!

 

연습기간을 충실하게 지내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객석은 만석이었다. 연일 환호 속에서 무대가 암전되었고, 극장을 나오면 관객들이 모두 다 나를 쳐다보는 것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3개월 공연 중에 한 달이 막 지날 즈음이었다. 공연기간에는 주로 분장실에 앉아계시던 연출 선생님께서 공연 막 끝나고 분장실로 들어온 우리들을 향해 빙긋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봐! 장형! 오늘은 시원한 생맥주 한 잔 어때? 자네가 한 잔 사지!?

 

아내될 사람과, 아니 거의 아내된 사람과 둘이서 운영하는 대학로 연극인의 밤주막 ‘서커스싸구려관람석’도 늘 만석이었다. 그렇게 하늘은 종종 내 편이었다. 저녁 공연이 끝난 우리는 기획실, 연출부, 배우들 모두의 회식이 되었다. 밤주막 일명 ‘서커스’에 모여 앉아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우리 인생의 한 장면이 이토록 즐거운가! 하는 생각도 곁들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K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형!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해서 괜히 기분 나빠하거나 그러지는 마.

 

-아니 선생님 제가 왜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당연히 하실 말씀을 하실텐데요.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은, 내 말을 듣고 작품을 못하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아니 선생님 제가, 설사 무슨 말을 들었다고해서 어떻게 하던 작품을 못하겠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자네… 연기나 똑바로 하시지. 딴 거 신경 그만 쓰고.

 

딴 거에 신경 쓰는 게 내 취미인데 어떻게 그런 혹독한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내 귀가 정상인지 확인하려고 다시 여쭤보았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내 말은 장형이 연기나 똑바로 하면 더 좋겠다고.

 

연기를 가장 좋아하고 연기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을 가장 좋아하고,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연기만 하고 싶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점도 해야하고, 연기를 직업으로 생각하지만, 자주 핸드폰 끊기고 월세도 밀리는 일이 있지만, 연기의 세계에 뛰어든 걸 후회해본 적 없는데요! 라는 말씀은 못드리고, 선생님께 물었다. 제가 뭘 잘못하고 있나요?

 

-아니 그냥 그렇다고, 내가 캐스팅을 잘못했어.

 

하늘이 노래진 건 아니었다. 까만밤이었고, 지하주점 <서커스>의 천장에는 노란 알전구가 빛나고 있을 뿐인데,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술에 취하지는 않았는데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기획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슬슬 술자리 그만하고 일어서자!

 

기획팀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이제 연출부와 배우들만 남았다. 나는 다시 여쭈었다. 선생님, 우리 배우들이 뭘 잘못하고 있나요? 제가 뭘 잘못하고 있습니까? 말씀해주세요.

 

결국 선생님의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자리를 파했다. 나 잠깐 나갔다오겠다고 아내가 다 된 사람에게 전하고 선생님을 쫓아갔다. 선생님!

선생님! 아까 하신 말씀 진심이십니까?

 

-응!

 

-캐스팅을 잘못하셨다고요?

 

-응! 그래! 미스캐스팅!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다음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나란히 혜화역1번 출구까지 걸었다. 다른 일행들은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소나무길을 다 빠져나와서, 횡단보도 앞, 나는 멈췄다. 내가 발길을 멈추었으니 서로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저만큼 멀어진 선생님은 삐두룸하게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큰소리로 외쳤기 때문이었다. 저 이 연극 그만하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런 말을 듣고는 연극을 못하겠습니다! 배우에게 그러시면 안되죠. 배우가 그저 디렉션을 듣고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공연을 향해 달리는데요. 이건 아니죠. 아직 두 달 남았잖아요. 이제 한 달이나 지났는데. 그럼 미리 말씀하셨어야죠. 공연 시작되기 전에. 긴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 대표선수에게 갑자기 어디를 좀 고쳐라가 아니라 미스캐스팅이라뇨. 배우를 잘못 만난 인물이 어떻게 다른 등장인물이랑 같이 잘 살아가나요. 그럼 이제 어쩌나요? 선생님이 미스캐스팅하신 걸 저는 어떻게 극복해요. 농담이면 농담이라고 말씀하시든지, 아니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무얼 믿고 갑니까. 저 이 공연 못해요. 저는 못합니다. 아니 연출이 배우한테 그럼 안되죠. 배우가 잘못하는 건 다 연출탓이예요. 배우의 단점을 연출이 단도리해야죠. 그래서 배우도 멋지고 연출도 멋지고 작품도 멋지게 만들어야죠. 배우들은 항상 맨마지막까지 남아야 할 사람이잖아요. 미스캐스팅이라니. 그걸 지금 말하다니. 차라리 막공 끝나고 말씀하시지. 공연이 끝났으니까 다시 돌이킬 수 없을 때, 최종 진단서를 보여주시지. 앞으로 두 달을 더 살아야 하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처음부터 다시 연습을 할 수도 없잖아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어떤지 제대로 본 적도 없으시면서. 그냥 늘 눈을 감고 듣고만 있으시면서. 분장실에서 듣고 있으면 무대가 다 보이나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도대체 어떻게 보이는지를 분장실에 다 들을 수가 있나요. 배우는 용납 안되는 일이 선생님께 그건 왜 말이 되나요. 내가 미스캐스팅이면 그건 선생님 잘못입니다. 직무유기! 직무유기!

 

그리고 되돌아서는데 소낙비같이 눈물이 터졌다. 못난 걸 못났다고 하는데도 더 속상한 건 누굴까. 못난 사람 아닐까. 자기가 왜 못났는지, 왜 미스인지 모르는 사람은 속상해할 권리도 없는 걸까. 그때 누군가 길을 막아섰다. 야 넌 또 왜 이래?

 

형님! 이러시면 안되죠. 우린 한배를 탄 사람들이라고 늘 말했잖아요. 형님이 그만두시면 우린 어떡합니까. 막내인 저에게 허락받으셔야죠.

 

우리 두 사람은 소나무길에 삐뚜름히 서 있는 소나무 아래에서 마주 앉았다. 날 허락해주라! 고 하면 녀석은 안됩니다! 허락 못해요. 형님 내일 극장에서 만나요. 하고 사라진 녀석을 보내고 술을 한 잔 더 마시고 결국 잠이 들었다.

 

다음날 극장으로 갔다. 뭐 어쩔 수 없으니까. 공연은 해야하니까. 다시 마음 추스리고 오늘 공연 잘 하고, 내일 공연 잘 하고, 모레 공연 잘 하고 그러면 되니까. 미스캐스팅이지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넓은 객석 한 가운데 선생님 혼자 앉아계셨다. 자판기커피 종이컵이 재떨이로 사용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앉았다. 오셨어요? 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그 다음 대사가 생각 나지 않았다. 침묵.

 

백년 정도 긴 침묵이 흐른 뒤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어제 실수 했다면서?

 

네! 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어떨결에 겉으로 나왔다. 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난 아마 진실만을 말했을거야. 내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상처받지 말고. 너무 상처받지 말고.

 

너무 상처받지 말고… 이 말만 계속 머리통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일어서서 분장실로 돌아왔다. 상처를 끼쳤으면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 난 늘 그랬는데. 그러고서 또 상처주고 미안하다고 또 사과하고 그랬는데, 사과가 없네?

 

분장실 거울 앞에 엎드려 흐느꼈다. 고개 숙이니까 자동적으로 눈물이 나왔다. 울다가 거울을 보니까 진짜로 미스캐스팅 하나가 앉아있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엎드린 얼굴과 손등 사이 눈물 축축한 곳으로 보드라운 티슈가 쳐들어왔다. 그만 울어요 형님!

 

어젯밤에 자기한테 허락받으라고 생떼를 쓰던 녀석이었다. 티슈가 자꾸 쳐들어와서 광대뼈쪽은 이미 하얗게 함락되었다. 형님! 지금 관객 입장하는데 조용히 울어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거울앞에서 일어섰다. 찬물로 얼굴을 씻고와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그날 공연 아주 만족했다. 미스캐스팅인데 좋았다. 그런 기분 처음이었다. 실컷 울고나서 내뱉는 대사가 아주 시원시원했다. 티슈에 억눌린 광대뼈가 아주 신이 났었다.

 

세월 참 많이 지났다. 이제는 알겠다. 이제 알만한 나이, 몸의 감각이 나이를 가르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분장실에서 듣고 있으면 더 잘 들리는 말이 있다. 눈을 감고 들으면 더 잘 보이는 풍경이 있듯이.

 

선생님! 고맙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요즘에.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난 진실을 말했을거야. 그러니까 너무 상처받지 말게!

 

오늘을 살아가는 문장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그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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