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작집단 상상두목 <이상한 나라의, 사라>

글_양세라(연극평론가)

 

‘창작집단 상상두목’의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원인진 작, 최치언 연출; 2024.02.23.~03.03)는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가운데 하나다. 필자는 이 작품이 취약한 존재로 살아가는 사라와 엄마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 서로 상호의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를 은유하는 연극으로 보았다. 그런 점에서 ‘2023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된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내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연극은 사라의 내밀한 자기고백이 코러스와 재현하는 현실과 교차하며, 이를 지켜보고 개입하는 렉쳐 퍼포먼스로 구성되었다. 이 연극 구조는 마치 심리극을 이용한 사라의 치료과정처럼 보였다. 스무날 분의 항정신성 약물을 한꺼번에 삼키는 사라가 혼수상태와도 같은 잠을 오가는 상태에서 엄마와 자신을 돌아보는 극적 구성이 인상적이다. 내담자처럼 사라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개인의 내면과 무의식을 마치 상담과정처럼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창작집단 상상두목 ⓒ윤헌태

 

연극 제목 때문인지, 주인공 이름 때문인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Lewis Carrol, 1832~1898)를 연상하게 된다. 나무 밑둥의 잘린 단면처럼 넓적한 테이블형 탁자에 사과를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라의 장면은 상징적이다. 꽃피는 봄 조현병을 앓는 엄마에 대한 사라의 고백은, 엄마의 병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라의 불안과 공포이기도 하다. 불안과 공포의 고백은 흰 토끼구름이 무대 뒤에 연출되고 블랙홀처럼 나선형의 무대로 표현되었고, 이 무대를 뛰어다니며 자신을 꺼내달라고 외치기도 한다. 사라의 행동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호기심을 감지한 토끼굴 너머의 세계를 통과하며 지나는 여정과 그 여정이 환각일 수 있다는 설정과 닮았다. 그렇기에 앨리스의 환타지 서사는 마치 자신이 느끼고 보는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앨리스의 고백을 듣는 것처럼, 사라의 극적 행동과 닮았다고 느꼈다.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를 보고 비로서 용감하고 호기심이 많은 소녀처럼 보이는 앨리스가 계속 혼잣말을 했던 그 행동, 당황스런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혼내던 또 다른 행동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병에 든 쥬스를 마시고 몸이 커지거나 케잌을 먹고 작아지는 등의 행위는 마치 앨리스가 음식을 섭취하는 장애가 있음을 말하는 방식이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런 연상과 연속된 사유가 가능한 것은 이 공연에서 질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편협함을 그 ‘이상한’이라는 언어를 매개로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아빠를 죽여줄까 묻거나 엄마의 웃음에 안도하는 사라에게서 억압된 심리를 드러내는 앨리스의 자기고백을 발견한다.

 

사라의 억압된 심리와 정서를 반영한 무대가 인상적이다. 무대 천장과 바닥은 우주, 천체처럼 재현되었고 무대 뒷벽은 구름이 그려진 병풍처럼 무대 뒤에서 극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사라의 내면이 폭발하듯 드러날 때, 혹은 엄마에 대한 기억의 정서가 그 벽면 무대에 조명으로 일렁였다. 어렴풋이 엄마의 조현병에 대한 기억과 엄마의 질병이 발현되었던 때, 봄비와 함께 사라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사라는 고백하듯이 읊조리고, 격정적인 움직임으로 무대를 달리다 지쳐 나둥그러진다. 그녀가 달리고, 말하고, 절망하는 무대는 원형의 나선처럼 재현되어 사라의 무의식을 재현한다. 풀린 동공, 빠른 심장박동처럼 이 무대는 불안함 그 자체였다. 그런 무대디자인은 블랙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에 갇힌 듯 사라가 달음박질에도 그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심연(深淵)을 연출한다. 이 무대는 <이상한 나라의, 사라>에는 조현병을 앓는 엄마의 위태함을 지켜본 딸 사라의 불안과 공포 그 자체였다.

 

사진 제공: 창작집단 상상두목 ⓒ윤헌태

 

사라는 엄마의 병을 마주하면서 남편이자 아빠가 보여준 행동을 통해 반감과 함께 상실감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라의 고백과 회고는 코러스들에 의해 사라의 환경과 사회관계를 그리고 사라의 두려움과 내면을 재현하는 그림자처럼 무대를 채워 극중극의 역할을 한다. 사라와 코러스가 대응하며 사라가 겪은 일들은 마치 그녀가 심리극을 통해 자신의 억압된 내면과 무의식을 드러내는 과정처럼 재현되었다. 특히 코러스들이 검은 옷을 입고 사라에 대응하듯 연기를 하는 과정은 절제된 연기를 통해 사라가 경험한 현실로 재현된다. 이러한 재현은 사라가 경험한 일종의 억압을 재현하는 보조 자아의 역할을 한다.

사라는 이 연극의 주인공이면서 내밀한 자신의 삶을 고백하면서 스스로 재현도 한다. 또한 검은 의상의 코러스들은 사라의 삶에서 중요한 타인들-태평한 선생님, 시큰둥한 목사님, 무기력한 의사 선생님 그리고 신문, 뉴스, 영화, 방송, 유튜브에서의 수근거림들-을 연기하는 보조 자아이다. 관객은 사라와 그의 보조 자아들의 상호작용처럼 재현되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원인진(작가) 배우가 강사 혹은 의사처럼 개입하면서, 사라와 그 어머니의 병을 설명하고 사라의 상황과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 연극의 이중적인 극의 구조가 드러난다. 이로 인해 객석에서 관객은 무대에 재현되는 사라 엄마의 조현병 서사와 사라의 딜레마에 동일시하던 순간, 사라의 두려움과 불안의 근원에 사회적 편견과 무지가 영향을 미친 맥락과 배경을 알아가게 된다.

이 연극의 장면전개는 이렇게 사라의 내면과 기억, 심리를 재현하는 심리극 구조를 드러내며, 나아가 관객에게 치료의 방향을 확장한다. 원인진(배우이자 극작가)은 조현병에 대하여 설명하는 강사이자 사라의 상황에 개입하는 치료사다. 마치 사라의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처럼 사라의 고백이 재현되는 순간에 그녀의 상황을 임상보고 하듯이 관객을 향해 설명한다. 사라케인의 작품제목 <4.48>을 되뇌이고, 사라의 우울감과 두려움이 교차하며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사라에게 개입하는 극작가의 역할연기는 조현병의 또다른 희생자인 사라가 스스로를 해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지적 개입처럼 강렬하였다.

‘꽃의 무덤, 사과’, 이 연극에서 주목할 만한 오브제로 사과가 기억에 남는다. 무대 가운데 잘려나간 나무밑둥 같은 탁자가 자리하고 그 위에 사과 하나가 올려져 있다. 공연의 시작과 끝, 그리고 사과는 이 작품에 영감을 준 영국의 극작가 사라케인의 작품 <4.48>을 시간화하여 사라의 절망과 두려움이 고백되던 순간으로 자주 정지하듯 연출되었다. 이는 마치 사라의 또 다른 분신처럼 느껴진다. 이 연극의 주인공인 사라가 엄마의 조현병과 사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겹칠 때는 엄마의 분신인 사라의 근원적 공포가 표현되는 것 같았다. 사라의 심리극으로 구성된 이 연극은 사라의 가족서사를 공유하며 넓은 의미에서 치료과정에 있는 집단치료를 은유한 연극이다.

 

사진 제공: 창작집단 상상두목 ⓒ윤헌태

 

공연을 계기로 우리 현실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돌봄과 그 체계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지를 돌아본다. 우리는 무관심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무관심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직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오랫동안 사회구조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것에 취약하다. 조현병을 겪는 사라엄마에 대한 사라의 고백은 가족 한 가운데 한 사람이 증상으로써 고통을 호소할 때, 다른 가족 성원들도 그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든 공유하는 우리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가족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사람을 드러난 환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라는 드러난 환자였다. 조현병에 대하여 아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 불편하고 불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도 언젠가 사라처럼 드러난 환자로서 존재할 수 있다. 이 연극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생성하는 집단무의식, 집단의 무지를 치료할 필요를 연극적으로 매개하는데 멈추었는가. 조현병 정보를 계속 설명하는 강의를 시도하는 이 연극의 극적 행동을 매개로 관객도 치유가 필요한 취약한 존재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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