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골소극장 1988

글_채승훈 (연극연출가)

 

대학로예술극장 들어가는 길 입구쯤에 한 건물 지하에 ‘바탕골 소극장’이라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다. 1980년대 중반쯤 설립된 극장이었다. 미술을 하는 건물주가 직접 운영한 극장이었고 ‘바탕골 극단’이라는 단체도 직접 운영하였다.

그즈음 ‘바탕골 소극장’은 젊은 연극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필자도 거기서 몇 작품을 공연하였다.

 

1988년 1월경 뜻밖에 ‘바탕골 극단’(‘바탕골 소극장’이 설립한 극단)에서 요청이 하나 왔다. 한 작품을 연출해달라는 것이었다. 작품 제목이 ‘매춘’이었다. 정확히 ‘매춘1’이었다. ‘매춘1’과 ‘매춘2’를 연속 기획 공연하는데 ‘매춘1’의 연출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매춘? 제목이 매우 부담되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오태영 작가가 썼고, 우리나라 매춘의 현상을 취재한 르포 작가 Y모씨의 르포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대본을 읽어보니 매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외세 침탈의 역사를 매춘 상황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공연은 차후에 연극계에는 폭풍을, 필자와 동료들에게는 큰 시련을 주었다.

 

 

바탕골소극장 현재 모습

 

당시에는 사전 검열제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검열제도는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왔다. 196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선 다음에는 문공부(지금의 문체부)에서 직접 시행하였다. 1970년대 중반 즈음 그걸 좀 더 전문화, 고도화하기 위해서 문공부 산하에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를 만들어 민간위원 중심으로 사전검열을 한 것이었다. 공윤은 모든 공연물, 영상물, 음악 등을 사전에 검열하였다. 공윤의 역할은 뻔하였다. 그즈음 군사독재정권이 그 정권의 임기를 늘려가는 중이었는데 와중에 예술에 자갈을 물려서 예술을 통한 비판의 여지를 없애고자 한 것이었다. 마치 1940년대 초반 전쟁에 혈안에 된 일제가 한국 예술가들에게 자갈을 물리기 위해서 검열이나 탄압을 혹독하게 강화한 것과 같다.

 

그 후 90년대 중반까지 존속한 공윤의 역할은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공연을 하려면 사전에 대본을 제출하여 심사를 받아야 했다. 당연히 정부 정권을 비판하거나, 외설적인 요소가 있거나 하는 작품들은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아니 배제되기도 전에 알아서 그런 작품은 내지도 않았다. 동토의 시대였다. 대본이 통과되고 나면 이어서 포스터 같은 홍보물도 제출하여 검열을 받았다. 포스터의 내용, 문구, 심지어는 색깔도 간섭하였다. 포스터가 통과되면 하단구석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도장이 없으면 불법 포스터이다. 연극인들은 대본, 포스터 심사가 통과되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그러니 사전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필자가 한번은 사르트르의 작품을 하는데 무대 배경에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마르크스의 인물 사진을 액자로 해서 걸었다. 하루는 공윤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나한테 와서 그 사진을 뗄 것을 요청하였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물론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매춘1’은 공윤의 사전검열을 통과되지 못하였다. 그들이 대본심사에서 문제를 삼은 것은 ‘콘돔’, ‘옷을 벗어라’ 등의 저속한 대사, 창녀를 채찍으로 때린다는 무대 지문, 우리나라 최초의 양공주는 미국 「셔먼」호 사건 당시 미국인을 접대하기 위해 동원된 평양기생이라는 등의 반미 성향 등이었다. (이런 내용은 당시 신문 기사에 기술되어 있음) 공윤은 우리에게 위의 사항들을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는 대본 수정을 거부하고 공연을 강행하였다. 또 자체 회의를 거쳐 이왕 이렇게 된바, 예술 작품에 대한 공윤의 지나친 표현 자유 침해 문제를 사회에 제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당시로써는 큰 모험이었다.

 

일단 공연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공윤 측은 대외적으로 우리 연극이‘외설’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들의 속내는 뻔하였다. 역사적인 부분을 거론하게 되면 정치적인이유로 억압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니까 외설 부분만 내세운 것이다. 치고받는 과정이 당시 저녁 9시 뉴스에까지 연일 중요하게 다뤄지기 시작하였다. ‘매춘1’의 공방은 전국민적인 관심거리가 된 것이었다.

 

공연이 시작된 지 이틀 정도 지났을 때 극장밖에 중년 여성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청소년 유해 연극 몰아내자’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하였다. 이 모습을 방송국에서는 그대로 찍어갔다. 내가 직접 그들에게 ‘연극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보나마나 뻔하지 뭐.’라는 답변들을 하였다. 본 사람은 없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방송국 기자들이 사라지자 ‘야 갔다. 가자.’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번개같이 사라졌다. 동원된 관제 데모가 분명하였다.

 

연일 뉴스에서까지 떠들어준 덕분?인지 관객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공연 전에 관객이 백 미터 이상 줄을 섰다. 바탕골소극장은 끽해봐야 150명 정도의 관객이 들어서면 입추에 여지가 없을 정도로 꽉 찬다. 줄은 선 관객 중의 반은 보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당시의 관행이었던 연극인 초대조차 할 수가 없었다.

 

공연을 강행하자 공윤과 보조를 맞춘 서울시는 극단 측에 공연을 정지하라고 종용하였다. 당시엔 공윤의 심의필증과 서울시의 공연 신고필증 없이 공연하면 공연단체 등록취소, 작품의 공연정지, 공연장 허가취소 또는 폐쇄를 명할 수 있게 공연법에 명시되어 있었다.

 

결국 공연 개시 며칠 되지 않아서 그들은 강제로 극장 문을 폐쇄하고 우리를 몰아냈다. 실제로 경찰관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어서 아무도 극장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는 나름대로 저항하기 위해서 성명을 발표하였다. 또, 무대 의상을 입고 대학로 거리를 매일매일 피켓을 들고 돌면서 시위를 하였다. 아래는 당시의 성명이다.

 

 

우리의 입장

 

당국은 소정의 공연 절차를 이행치 않고 공연을 강행한 이후로 바탕골소극장을 폐쇄하고 공연을 중지시켰습니다.

법을 어기는 사태에 비난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이러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의지를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언론과 방송의 지대한 관심과 전국 29개 연극 단체의 지지 성명, 성원의 보람도 없이 막을 내렸지만 우리는 우리의 무대가 타의에 의해서 박탈당하는데 울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 선배님들의 편견과 오해에 의한 것이라는 데 더욱 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연극계 선배님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공연을 계속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우리의 근본 취지를 왜 왜곡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다음 사항도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 헌법정신에 담겨진 창작 및 표현 자유를 근본적으로 억압하는 현 공연윤리위원회 설치 조항은 민주화를 운운하는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존속할 이유가 없다.
  2. 우리는 매춘에 가해진 공연장 폐쇄라는 억압적인 당국의 조치를 즉각 취소할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우리들은 연극이 다시 관객들에게 공연될 수 있도록 한마음이 되어 표현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이며 당국과의 합의를 통한 편법 공연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3. 우리는 연극계 선배님들이 현 체제 공윤위원회의 심의 위촉 받아 공윤의 사전 심의제도 자체를 합리화 시켜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매춘 1,2 연극 참가자 일동.

 

 

대치가 가열되는 과정에 일부 배우들은 대열에서 빠지라는 정체 모를 사람들의 협박 전화도 받았다. 하루하루가 심각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기성 연극인들에게 받은 도움은 전혀 없었다. 극장 가까운 곳에 한국연극협회가 있었는데, 그들도 조용하였다. 도리어 협회 소속이 아닌 재야 단체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성명을 내며 우리를 응원하였다. 공연이 결국 강제로 막을 내리자 평자들은 ‘매춘1’은 외설이며 저급한 작품이라는 평들을 하기 시작했다. 공연을 언제 와서 봤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매춘1’은 그냥 외설이자 저급한 연극이라는 낙인이 고정화 되었다. 그리고 그런 면이 부각 되자 ‘매춘1’은 저급한 작품이어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가치조차 없는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평자도 그런 논조로 글을 썼다.

 

아,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연극을 잘 만드는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미흡한 작품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자유조차 갖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황당한 궤변이 그럴듯하게 인정되던 시대였다.

 

그들은 그런 글로 우리를 지독하게 폄하하고, 대신 그 긴 세월 동안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독재에 협조로 일관해왔던 그들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한편으로 그들이 불쌍하였다.

 

작품이 미흡하다는 그들의 주장에는 기분은 나쁘지만 토를 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외설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공윤 측에서 외설, 외설 떠들어대고, 방송에서도 그걸 그대로 인용하는 식이니까, 우리는 공연 나흘째쯤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 무기명으로 설문지를 돌려서 외설 여부에 대해 물어보았다. 작품이 외설이라는 답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실제로 노출 장면도 없었다. 상반신의 겉옷을 벗어젖히면 어깨 부분만 드러나는 정도가 존재할 뿐이었다.

 

추측하건대, 공윤은 내심 작품 내용 중에 정치, 역사적인 부분을 가지고 억압한다는 인상을 피하고자 대외적으로는 외설을 내세운 것이고, 또 그런 의도가 들통날까 봐 공연을 부득부득 못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들의 의도는 한편으론 성공하였다. 언론 홍보, 관제 데모 등을 이용해서 이렇게 사실을 탈바꿈시킬 수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로 공연이 중단되자, 극단은 공연 중지가 부당하니 취소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뜻밖에 그런 요구가 인용되어 ‘매춘1’은 다시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예정된 ‘매춘2’의 일정 때문에 ‘매춘1’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매춘2’는 ‘매춘1’의 유명세 덕분에 연일 매진행렬이었다. 연장공연도 계속하였다. 하지만 이후로도 ‘매춘1’은 다시는 공연되지 못하였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사전검열이 부당하므로 차제에 공윤의 사전검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법적 투쟁도 시작하였다. 결국, 사회적 환기가 이루어져 몇 년 후 헌재에서 사전검열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에 따라 수십 년 동안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던 사전검열제도는 폐지됐고 공윤은 없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엄혹한 긴 기간 동안 자기 검열을 해왔던 예술가들의 영혼도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 그건 마치 고문당한 사람이 평생 그 상처를 지니고 불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모든 상황은 끝났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매우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냥 외설 연출가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친구들이나 친척들, 동료 연극인들로부터 비난과 비아냥을 수도 없이 받았다.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을 정도였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하루는 누가 응원차 연락한다고 하면서 보자 하길래 나가봤더니, 영화사 사람 두어 명이 와서 영화연출을 하면어떻겠느냐면서 시나리오를 몇 권 읽어봐달라고 하였다. 앉은 자리에서 대충 훑어보니 소위 ‘그런’ 영화였다. 바로 거절을 하였지만 기분이 참담하였다. 그 뒤로 ‘매춘’이라는 이름을 단 영화가 시리즈로 나올 정도로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 당사자들은 모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걸로 큰돈을 벌고, 요지경이 따로 없었다.

 

지금도‘매춘1’은 학자나 평자들의 글에 간혹 등장한다.‘외설 작품이었지만 공윤을 폐지하고 표현의 자유를 가져온 계기가 된 작품’이라는 표현이 대부분이다. 아예 외설로 규정을 하고 들어간다. 공윤에 의해서 외설로 규정되면 그건 그대로 역사에도 인정이 되는 걸까? 공윤의 존재가 잘못되어서 폐지되었다면 그들이 내린 판단 또한 재고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16년 예술계에 블랙리스트 사태가 터졌다. 공윤과 같은 공적 감시기관이 없어지니까 이제는 사적으로 은밀하게 유사한 짓을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세간에 그 음모가 드러나고 청산 절차를 거쳐서 관련자들은 사법 제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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