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ve] 아홉 소녀들/ 김창화

창단 10주년을 맞은 극단 ‘프랑코 포니’ 공연 : “아홉 소녀들”

 

김창화 (상명대 공연영상문화예술학부 연극전공 교수)

 

2009년 미셀 마르크 부샤르(Michel-Marc Bouchard)의 희곡 “고아 뮤즈들(Les Muses orphelines)”로 창단공연을 시작한 극단 ‘프랑코 포니’가 벌써 10주년을 맞이했다. 그래서 지난 3월 22일부터 4월 8일까지 대학로에 있는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1970년에 출생한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연출가, 배우인 상드린느 로쉬(Sandrine Roche)가, 2010년 프랑스 렌느에 있는 ‘서클극장’에서, 9살에서 10살 정도의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극 창작 아틀리에를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희곡, “아홉 소녀들(Neuf Petites Filles)”을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의 무대로 준비했다. 모두 23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밀고 당기기(Push & Pull)’라는 영어 부제가 암시 하듯, 즉흥적이고, 신체적인 언어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 소녀들의 ‘내면적인 풍경’을, 상징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번역은 현재 숙명여대 프랑스 언어문화학과 교수이자 극단의 대표인 임혜경 교수가 맡았고, 연출은 지금까지 극단의 ‘상임연출’로 활동한 외국어대학교 불어과 교수인 까티 라뺑이 담당했다.

 

“아홉 소녀들”은 지금까지 브라질, 덴마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러시아에서 공연되었고, 이번엔 한국에 처음으로, 극단 ‘프랑코 포니’에 의해 소개되었다. 세 명의 남자배우들(한철훈, 김진곤, 홍철희)이 여섯 명의 여자배우들(권기대, 김시영, 김혜영, 허은, 이지현, 김신록)과 함께, 짧고 붉은 치마와 흰 블라우스, 붉은 색 매듭과 운동화차림으로, 이름도 없고, 줄거리도 없는 이 연극에서, 신체적 표현과 즉흥놀이, 상황 극을 통해, 가장 프랑스적인 소녀들의 심리적 불균형을 한국의 보편적인 관객에게 잘 전달했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에너지와 힘은 역시 프랑스 청소년의 기질과 문화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연출자 까띠 라뺑의 ‘연출적 실험’ 이다. 지금까지 줄거리를 전달하기 위한 연극적 표현에 집중했던 연출 기법을, 이번 공연에서는 이야기와 연결된 배우들의 심리를 ‘미니멀한 움직임’으로 재현하면서, 소품도 없애고, 연극적 상상력을 높이기 위한 단순한 무대공간을 매우 적절하게 잘 활용했다. 그래서 프랑스 청소년의 ‘문화 매개자’로서의 공연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졌다.

 

사실 이 공연은 자칫하면, 청소년연극으로 오인될 소지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세 명의 남자 배우가 여자아이의 역을 하면서, 연출은, ‘젠더’의 개념을 넘어선, 보편적 이야기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사회적 충동’과 ‘억압’ 그리고 넘어설 수 없는 ‘욕망의 그림자’를 무대 위에 재구성했다.

 

이 작품에는 주로 ‘어떤 여자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이 여자아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환경’은 사실 ‘어떤 남자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3종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무대는 축구장, 당구장, 공원, 어린이 놀이터, 시적인 공간으로 무한한 변형을 시도하면서, 소년, 소녀들이,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일상처럼 부닥치게 되는, ‘폭력성’과 ‘잔혹성’ 그리고 ‘차별’과 ‘차이’를 경험하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에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없다. 나이, 국적, 직업, 가족관계를 전혀 알 수 없는 아홉 명의 소녀들이 즉흥적으로 펼치는 ‘연극놀이’속에서 우리는 소녀들의 ‘은밀한 속살’과 소녀들이 맺고 있는 여러 가지 ‘관계의 그물망’을 읽어 내게 된다. 또래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 남자친구에 대한 다른 여자아이들의 반응과 판단, 그리고 인종차별이 과격해지는 이유, 과정, 무책임한 대안 등에 관해,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냥 드러내 보인다. 이 희곡의 지문은 ‘로만체와 이탤릭체’로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로만체와 이탤릭체는 ‘병렬적인 두 가지 이야기 또는 같은 이야기의 두 가지 관점’을 지시한다고 번역자이자 드라마투르그로 이번 공연에 참여한 임혜경교수가 프로그램노트에 ‘작품 해설’로 안내했다.

 

총 23장의 연극적 이야기는 크게 ‘가해자와 희생자의 등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9명의 어른 같은 소녀들이 펼치는 이 연극은, ‘가해자, 지배자-피해자, 희생자가 있는 이야기의 도식’을 통해, 21세기 독과점체제의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자유 시장주의 경제’체제에서의 ‘인간의 모습’과 위기를 어린 소녀들의 불안정한 시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소녀들이 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단지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 매우 유감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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