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열하게 현재에 욕망한다

배우 신용진

 

글_선연 김수미(연극평론가)

 

**릴레이톡톡은 오랫동안 대학로 무대에 섰던 배우들을 찾아갑니다.
긴 시간동안 무대를 지켜왔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좋은 배우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그들이 만드는 연극은 어떤 모습일까요. 릴레이톡톡은 배우들이 지목하는 배우들로 이어나갑니다. 

 

 

<괴물>

 

신용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채 장사를 시작했다. 가게 청년의 남다른 마스크를 알아본 이는 엔터테인먼트사 직원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스무 살의 신용진은 방송에서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어요. 방송 생활이 좀 답답할 수밖에 없었죠. 연극이라면 어릴 때 성극 경험이 전부였는데, 연극에 대한 갈증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마침 기회가 생겼고, 동숭무대 <몽환곡>의 예비군 조교 역할이 첫 무대였어요.”

연기를 시작하고 2년 만의 일이었다. 2002년부터 신용진은 브라운관을 벗어나 극장으로 들어갔다. 자잘한 잡일부터 시작했던 동숭무대 극단을 거쳐 화살표 극단에서는 2년 가까이 <보고싶습니다>(정세혁 연출)에 출연했다. 임정혁, 정세혁 연출과 서너 작품을 하면서 기본기를 다졌고, 그 사이에 연출가 김학선, 하일호 등과도 작업을 했다.

다양한 연출가들과 작업을 하는 동안 신용진은 자연스럽게 배우의 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나 텍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평범한 연극 작품에서는 딱히 별다른 경험이나 자극을 얻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때에 마침 김현탁 연출의 극단에서 작업할 기회를 얻었다. 김현탁은 배우의 신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연출가였고, 그는 배우 몸을 통한 연극 텍스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일관성 있게 작품에 담아냈다. 김현탁의 극단 성북동비둘기에서 <연극의 본질 메데이아>(2007)와 <산불>(2008) 작업을 하는 동안 신용진은 배우의 신체훈련과 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배웠다.

 

<산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1년 정도 작업을 했는데,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정기적인 트레이닝을 두세 달 가까이 해요. 실제 연극연습은 2~3시간인데 요가, 현대무용, 연극놀이처럼 움직임의 기본기를 다지는 훈련 시간이 많죠. 제게는 몸에 대해 이해해가는 시간이었어요. 그 전에도 나름대로 신체훈련을 해봤지만 뚜렷한 지향점이 없어서 구체적이거나 지속되기가 어려웠어요. 지금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배우로서의 몸을 이해하기 전과 후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산불>에서 인민대장을 맡았던 신용진은 대사 없이 춤만 췄다. 연출가 김현탁은 배우 움직임의 소스를 발레에서 찾았고, 발레라는 장르적 속성을 계급화된 이데올로기에 적용하는 과정을 실험했다. 신용진은 그 실험대 위에서 연출가의 언어를 몸으로 바꿔내야 하는 ‘배우’였다.

“처음엔 낯 뜨겁기만 했어요. 춤꾼이 아닌데 춤으로 관객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저는 어차피 무용수가 아니고, 관객들도 무용을 보러 극장에 온 게 아니잖아요. 춤을 잘 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배우로서 배역을 하는 게 제 몫이었던 거죠. 그걸 알아차리는데도 시간이 걸렸어요. 어설픈 몸짓으로 발레를 하는 인민대장의 모습, 그것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몸으로 말하는 게 제가 맡은 역할의 목적이었던 거예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독살미녀 윤정빈>

 

신용진은 백지였다. 때마다 새롭게 밑그림이 그려지면 스스로 나름의 색을 찾아 입혀야 했다. 어떤 색채감이 드러날지, 그래서 결국 어떤 그림이 될지는 색이 채워지고 물감이 마를 때쯤 알 수 있었다. 배우는 – 누구보다도 배우 신용진은 그 시간을 막연하게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다. 지표가 될 만한 무엇도 없이 사막의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신용진의 20년은 그 질문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관객들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무대에 서 있는 내가 작품에 피해를 준다고 느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작품에 피해 안 주고 기본은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까 이제는 조금씩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번역극 <새벽부인>(2005, 하일호 연출)을 할 때만 해도 신용진은 무대 위에서 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 생활도 초기였던 데다가 바로 전 작품이 2년이나 장기 공연된 창작극 <보고싶습니다>였던 터라 몸에 배어버린 일상적 대화체로 번역극을 소화해내기가 어지간히 어려웠다. 신용진은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온몸으로 부닥치면서 좌충우돌을 경험했다. 쓰라리고 아프고 부끄럽고 창피해도 딱히 도망가거나 기댈 곳이 없었다. 그저 견뎌내는 것만이 그 시간의 강을 건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여행>

 

20년을 해봐도 그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소리를 한다. 어쩌면 아직도 여전히 잘 모르겠는 그가 오히려 다행스러운지도 모르겠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이고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리는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쑥스럽거나 부끄럽지는 않겠지만, 닥치는 대로 아프고 쓰라리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만큼의 순도 높은 감성으로 사람과 시간을 흡수해내기가 어려워진다. 여전히 모르겠는 20년 숙성의 배우는 오히려 아직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연극배우를 연극배우로 살게 하는 질문은 그래서 곧잘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멈춘다.

“서른여섯 살에 주말드라마를 하면서 알았어요. 돈이 생기니까 생활이 더 낫기는 했죠. 그런데 그때 왜 연극이 고맙고 행복한지를 알았어요. 촬영장에서 기다릴 때는 몰랐는데, 분장실에 앉아있으면서 내가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기묘여행>

 

30~40편 정도의 작품을 하는 동안 신용진은 연극을 오로지 현장의 경험으로만 배우고 흡수했다. 연습게임도 없이 실전 게임부터 시작한 탓에 남들보다 몇 배로 더 거칠고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모든 작품이 뜨겁고 소중하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그의 연극 인생에서 특별히 중요한 작품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함부로 걸러내고 분류할 수 없는, 신용진에게 연극은 그런 것이다.

“<보고싶습니다>는 3번이나 앙코르를 했던 작품인데, 거창연극제 야외무대에서 공연할 때가 지금도 가끔 생각나요. 야외공연장이라서 배우들도 함께 무대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참 좋았어요. 관객의 집중도와 공연 후의 반응도 유난히 컸던 작품이었죠. <산불>을 할 때는 낯선 몸짓과 독특한 언어들 때문에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그런데 무대에 서고 나서야 이해를 했죠. 나는 의심했는데, 관객들은 믿더라고요. 오히려 관객들이 나를 이해시키고 바꿨던 셈이죠. 지금 극단 산수유에서 하는 작품들은 제게 잘 맞아요. 좋은 작품을 많이 했어요. 류주연 연출가는 세상을 건조하고 담담하게 바라보는 편인데, 작품에 접근하는 시각이 저도 비슷해서 정서적으로도 잘 맞아요. 번역극이어도 한국적인 재해석을 하는 것이 좋고, 텍스트도 완성도가 높은 편이에요. 제게 연극은 늘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에요. 그래서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짜 없는 진짜, 우리들의 연극배우는

 

<동물없는 연극> 연습장면

 

산수유 극단에서도 이제 제법 후배라고 부를 수 있는 동생들이 생겼다. 후배들이 신용진을 보면서 ‘선배처럼만 하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신용진은 ‘나처럼만 하지마’라고 되받는다. 후배들의 그 말은 신용진의 가슴을 오히려 저릿하게 만든다.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려고 하면 저는 그냥 맥주 마시자고 하죠. 나 정도의 사람을 목표로 두지 말고 좀 더 높고 멀리 목표를 뒀으면 좋겠어요. 난 아직 헷갈리는 것이 많아요. 나는 어떻게 50대, 60대가 될까. 어떻게 계속 배우로 살아가야 할까 아직 고민합니다. 2, 3편 연극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빚이 쌓여요. 공장에도 가고 대리운전도 해요. 연극이 분명히 환상적인 것만은 아닐 거예요. 그런데도 연극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있잖아요. 진실병같은. 본질과 의의와 가치에 목숨 거는. 저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었죠. 지금요? 지금은 유튜브 보면서 명상해요. 설거지를 할 때 그릇을 깨끗이 하려고 하지 말고 그릇 씻는 행위에 집중하라는 말도 있더군요. 그런 말을 들으면 오래오래 곱씹어보고 그러죠.”

신용진은 배우이면서도 유독 욕망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욕망을 스스로 제거해버린 듯한 그의 단면을 확대해서 보는 이들은 그를 오히려 애매하게도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 동안 연극배우로 자리 잡기까지 그는 혼자였다. 지독하게 외로웠고 처절하게 의욕과 욕망이 꺾이는 과정을 지나와야 했을 것이다.

인간의 지나친 검은 욕심과 배우로서 갖는 열정과 욕망의 경계 사이에서 그는 아직 방황 중이다. 그러나 신용진이 지금하고 있는 방황과 두려움은 경계를 넘어 보려는 또 하나의 작은 욕망이기도 하다. 부유하고 방황하는 시간이 없다면 변하는 시간 속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화석처럼 굳어버리는 것은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그래서 신용진은 현재 치열하게 욕망 중인 셈이다.

그는 인터뷰이로서는 어려운 상대였다. 똑 떨어지는 명쾌함보다 모호한 답변이 많았고,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거나 거창하게 자신의 연기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3시간 가까이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느낌을 더듬어냈고, 녹음기에는 그의 애쓴 호흡들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신용진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매 순간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20년을 연기하면서도 언제 한번 자신의 이름을 폼나게 적어 기운차게 흔들어본 적 없는 평범한 모습, 우리 연극배우들의 모습이 대부분 그러하다. 진하고 분명한 크레파스의 느낌보다 파스텔톤에 가까운. 그렇게 가만히 스며드는 가짜 없는 진짜, 가짜를 모르는 진짜. 그런 배우들이 우리에게 귀한 이유다.

최근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오만한 후손들>(류주연 연출, 9월 18~29일)을 끝낸 신용진은 11월에는 부산으로, 12월에는 강릉에서 <12인의 성난 사람들>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그는 자신의 바통을 넘겨받을 릴레이 배우로 남동진을 추천했다.

“배우로서 이상적인 사람이죠. 연출, 홍보, 무대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면서 연극을 주체적으로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철학, 자신의 의지를 열정적으로 담아내려는 다방면의 노력이 멋집니다.”

 

다음호에서는 남동진을 만난다.

(*필자의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격월로 진행되는 릴레이 인터뷰는 두 호를 쉬고 3월에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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