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업! 연극교육

이연심(무학여자고등학교 교사)

‘10년의 법칙’이란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이 걸리는데,
하루 3-4시간 훈련이나 연습을 한다고 가정할 때
1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출처: https://www.vingle.net/posts/1734013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연극교육운동이 시작된 지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그 시작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월 교육부가 연극영화학과가 있는 각 대학에 1999학번부터 교직을 설치하였고, 그에 따라 교직을 이수한 1999학번 97명의 학생들이 교생실습을 나갈 협력 학교가 전국에 3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2000년 10월 전국청소년연극제 부대 행사로 연극교육을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되었고, 이 세미나에서 연극 교과목 개설의 필요성은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에 한국대학연극학과교수협의회 차원에서 ‘연극교과목 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인 연극교육 운동이 시작되었다. 전문성을 언급할 때 흔히 거론되는 ‘10년의 법칙’을 적용하면 우리 연극계는 많은 연극교육전문가가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다. ‘10년의 법칙’이란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이 걸리는데, 하루 3-4시간 훈련이나 연습을 한다고 가정할 때 1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10년의 시간은 자격을 획득한 이후 끊임없는 경험과 훈련, 반성의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연극교육이 잘 이루어지려면
가르치는 사람과 교육내용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출처: 픽사베이

교육내용을 매개로 학생과 가르치는 사람 사이에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가 교육이라면, 연극교육은 연극을 매개로 만나는 행위이다. 따라서 연극교육이 잘 이루어지려면 가르치는 사람과 교육내용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교육내용은 다시 구체적으로 교육과정과 교과서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연극교육은 연극관련학과에 교직과정이 생기기 전에는 예술고등학교의 연극관련 학과에서조차 타전공교사가 연극을 가르쳤고, 2007년까지 제대로 된 연극교육과정조차 없었다. 일반학생들을 위한 연극교육과정은 고사하고 예술계열 특수목적고 전문교과 연극교육과정도 2007년이 되어서야 등장하였으며, 2009개정교육과정을 거쳐 2015개정교육과정이 발표되면서 전문교과뿐만 아니라 일반 선택 보통교과에도 연극이 편제되었다. 비로소 전문계고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고 학생들도 연극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비록 초・중학교부터 체계적으로 연극을 배울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지 않아 반쪽짜리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연극교육에 있어서는 아주 큰 변화이며, 지난 15년간의 교육운동의 결실임에 틀림없다.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연극교과 교과서들

교과서는 연극계가 연극교육운동을 추진하면서 2002년부터 초・중・고 일반학생을 대상으로 개발한 5종이 전부였는데, 물론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기반한 개발은 아니었다.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를 고심하며 개발한 것은 2013년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인정도서가 처음이다. 그것도『연극의 이해』(경상남도 교육청), 『무대 기술』, 『연극 감상과 비평』(이상 전라남도 교육청) 과목에 한정되었고, ‘연극 제작 실습’과 ‘연기’ 과목은 여전히 교과서가 없는 상태로 오롯이 교사의 전문성에 기대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2015개정교육과정이 발표되면서 『연극의 이해』, 『연기』, 『연극 감상과 비평』, 『연극』(서울특별시 교육청, 『연극』은 지학사, 천재교과서, 금성출판사가 참여하여 3종이 있다.)교과서가 개발되어 빈 구석을 메꾸고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연이어 교수・학습자료, 평가 기준 등을 개발하여 교육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충실히 채워 넣는 노력을 하였고, 질적으로도 상당한 전문성을 갖춘 교육 자료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충분한 교사와 준비된 교사에 대한 질의는
분명 자격증을 가진 교사의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숫자도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그 진의(眞意)는 분명 ‘전문성을 갖추고 연극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육자’가 있겠느냐는 비아냥이었을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이러한 일련의 성과들은 연극교육운동이 본격화되었던 2000년부터 쉼없이 숨가쁘게 달려왔던 노력의 결과이다. 그 현장에 늘 함께 있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필자에게는 참으로 영광이고 뿌듯한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그 크고 작은 성과의 지점에서 항상 필자를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교육을 할 교사는 충분한가?’ 하는 질문이었다. 연극이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편입될 때도 우려를 빙자한 공격적 논리의 중심은 언제나 ‘준비된 교사가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여기서 충분한 교사와 준비된 교사에 대한 질의는 분명 자격증을 가진 교사의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숫자도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그 진의(眞意)는 분명 ‘전문성을 갖추고 연극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육자’가 있겠느냐는 비아냥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속이 쓰려왔다. 분명 우리 연극교육계에도 충분히 전문성을 갖춘 교육자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학술적 성과나 이론 등을 내놓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다못해 ‘연극교과교육론’ 책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연구 다음으로 ‘연극을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연구를 해야겠다고 오랜 시간 생각해 왔다.

교사는 전문직이며, 이 분야 전문성은 뭐니뭐니해도 가르칠 때 발휘되는 수업 전문성이 중심이고, 그 전문성의 핵심은 PCK라는 거다.

필자가 교사 전문성의 핵심인 PCK에 주목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교사는 전문직이며, 이 분야 전문성은 뭐니뭐니해도 가르칠 때 발휘되는 수업 전문성이 중심이고, 그 전문성의 핵심은 PCK라는 거다. PCK는 ‘Pedagogical Content Knowledge’의 약자로 의미하는 바를 직역하면 ‘내용을 교수하는 지식’ 쯤 된다. 이 용어를 처음 제시한 슐만(Shulman)의 표현에 따르자면 ‘내용’은 가르치고자 하는 교육내용에 대한 지식, 즉 교과내용지식(subject matter knowledge)이고, ‘교수’는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변환하여 가르치는 것, 즉 교수학적 지식(pedagogical knowledge)이며, ‘지식’은 이 둘이 화학적으로 결합한 교사의 말이나 행동 등으로 나타나는 실천적 지식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PCK는 수업에 드러난 교사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러한 실천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배경 지식으로 교과내용지식, 교수학적 지식과 더불어 수업이 이루어지는 특정 상황에 대한 지식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교사 개인의 실천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교사들은 교사로 존재하며 가르치고(self-in-role: being, doing), 때로는 작품 속의 인물이 되어 수행할 수(teacher-in-role: doing, showing doing)있어야 하며, 이 다양한 교사의 정체성을 기술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픽사베이

연극을 가르치는 사람, 연극교사의 정체성은 국어나 수학, 과학 등의 주지 교과, 또는 음악, 미술 등의 인근 예술 분야의 교과를 가르치는 사람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물론 교과의 특성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니 수학 교사는 수학교과답게 가르칠 것이고, 음악교사는 음악교과답게 가르칠 것이다. 물론 연극교사는 연극교과답게 가르친다. 따라서 연극교사의 정체성은 국어, 수학, 음악 미술을 막론하고 모든 타교과교사와 차별화되는 특성을 갖는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반교사에게는 자연인으로서 자신(self)과 교사로서의 역할(role)만 존재하지만 연극교사들은 여기에 인물(character)로서 존재하는 상황들이 생긴다. 즉 연극교사들은 교사로 존재하며 가르치고(self-in-role: being, doing), 때로는 작품 속의 인물이 되어 수행할 수(teacher-in-role: doing, showing doing) 있어야 하며, 이 다양한 교사의 정체성을 기술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연극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아(self)와 교사역할(role)과 작품 속 인물(character)이 공존한 상태로 그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미학적 거리를 형성 해 나가야한다. 그러니까 학생의 입장에서 만나게 되는 교사의 모습은 이렇게 차이가 나게 된다.

교수활동 상황에서 학생들이 만나게 되는 일반 교사와 연극교사의 모습 비교
*출처: 이연심, 「연극교사 전문성제고를 위한 교사교육모형탐구: 연극교과 PCK를 중심으로」

연극교사의 모든 교수 행위들은 교사의 말과 동작을 통해 설명되고 보여진다. 연극의 ‘말’과 ‘동작’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의 ‘말’과 ‘동작’으로 설명하고 시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말과 동작은 그 자체로 학습자가 배워야 할 대상이 되고, 예시가 된다. 여기에 연극교사가 다른 교사들과 차별화되는 특성이 또 하나 존재한다. 이는 배우의 몸과 말을 도구로 사용하는 연극 예술의 특성이 교사와 학생의 몸과 말을 도구로 사용하는 연극교과의 특성으로 그대로 확장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연극교과 PCK는 연극교사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요소이며 연극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그러한 일에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획득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이렇게 연극교사는 타교과나 장르의 교사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성이 있으므로 그들의 수업 전문성을 의미하는 PCK 역시 차별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연극교과 PCK(D-PCK)라 한다. 그러니까 연극교과 PCK는 연극교사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요소이며 연극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그러한 일에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획득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연극교과 PCK는 연극교사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사, 연극예술강사, 학원 강사 등을 포함하여 ‘연극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외없이 갖추어야 할 전문성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연극을 가르치는 일은 시간이나 장소, 대상에 따라 가르치는 사람의 전문성에 편차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연극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은 그에 합당한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전문성에 경중(輕重)을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연극교과 PCK에 대한 담론이 형성된 바 없고, 이제 겨우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형편이다. 부디 많은 연극교육자들의 연극교사 전문성, 연극교과 PCK 등에 관심을 갖길 바라며, ‘어떤 수업이 좋은 연극수업인가’에 대한 공론화의 장이 열리고, 연극을 학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연극교육 전문가에 의한 좋은 연극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제 “레벨 업! 연극교육”을 위해 연극을 가르치는 우리 선생님들의 전문성을 이야기 해 보자.

덧붙임: 연극교과 PCK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고 싶은 독자는 연극교육학회지 『연극교육연구』35, 36호의「연극교사 전문성 확립을 위한 연극교과 PCK(D-PCK)탐색」과 「연극교과 PCK(D-PCK)신장을 위한 연극교사교육프로그램 탐색」을 찾아보기 바란다.

One thought on “레벨 업! 연극교육

  1. 이연심선생님의 지대한 열성과 관심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연극과 교육을 생업으로 하는 저희들도 무관심한 게 현실인데 말입니다. 마냥 기존의 교육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여겨지는 게 현실인데 말입니다. 저는 배우로서 연극, 연기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 더욱 불만인 게 사실입니다. 오랜 경험으로, 지금의 연극교육은 다른 예술장르와 다르다는데, 달라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문예창작과와 연극과가 애써 학교교육을 해야 하는가에 많은 회의를 갖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의 예술교육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제생각으로는 새롭게 표현을 익히는 것으로 존속하는 게 전부인데, 그림은 데상을 음악은 음정과 박자, 발성 등을 기초교육으로 가르치면서 운영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문학과 연극은 별도로 익힐 게 없습니다. 일상에서 이미 다 익혀서 별도로 가르치고 배울 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입문자가 별도로 예술표현을 위한 새로운 기능을 익힐 게 없습니다. 그래서 혼란에 빠져 있는 게 현실입니다. 단지 교육이 필요하다면 단체로 상호간에 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문학은 이것마저도 필요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런 차별점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이에 대한 논리를 전개하는 책을 집필하고 있는데 나이탓에 진척이 없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연출은 연극보다는 문학성이 더 중요한 듯하고, 연기는 다중 앞에서 발표력이 좋으면 그만인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타고난 기질이 뻔뻔하면 더이상 가르치고 배울 게 없다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따라서 좋은 작가와 연출을 만나면 별도의 교육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역사나 미학적 이론은 개인이 터득해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호흡과 발성교육이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구어체가 주를 이루는 현실, 특히 영상매체는 이마저도 불필요한 게 현실입니다.
    따라서 연극은 인문학과 교사의 실질적인 경험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연극에 한평생을 보낸 저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일단 교사의 경험과 연극만의 교육 방법론을 찾는 게 급선무란 여겨집니다. 그런데 많은 교육이 석사, 박사를 배출하는 게 더 시급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현실을 개척, 개선하지 않으면 저희들의 연극교육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토론의 기회가 있으면 상호간에 의견을 교환할 필요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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