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교육, 여전히 힘드신가?

이연심(무학여자고등학교 교사)

연기교과서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연극교육을 하고 있는 연극교사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겨운 교육활동을 해왔을까 …….

출처: 오세곤 외, 『연기』, 서울특별시교육청, 2018.

“선생님, 건강하시죠?”

반가운 새해 인사를 하는 전화 저편에는 연극교사로 일하고 있는 제자 R선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의 순간에도 혹시나 오늘도 지친 목소리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수도권에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인 예고에서 연극교사로 일하고 있는 R선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학교 유일의 연극정교사였다. 연극교육 전체를 총괄하는 일에서부터 수업은 물론 자질구레한 민원업무까지 처리했을 것이 틀림없다. 거기에 학생들의 입시를 비롯한 실기 지도를 위해 기간제 교사, 전일제 강사, 시간 강사들이 줄잡아 21명 정도라고 하니, 그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며 큰 살림을 운영하는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덕분에 언제나 야근과 과로를 달고 살았을 것이기에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나의 인사는

“어이쿠 그래, 요즈음은 얼마나 바쁘신가? 여전히 힘드신가?” 이다.

그런데 이번 새해 인사는 좀 가볍다. 2020년은 그나마 좀 수월했단다. 안심이다. 더욱이 내가 집필에 참여한 『연기』교과서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연극교육을 하고 있는 연극교사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겨운 교육활동을 해왔을까 싶으니 선배로서, 또 연극교육운동을 하고 있는 선생으로서 미안하기도 하다.

자료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같은 내용을 설명하더라도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거나, 같은 용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자료를 만나게 될 때 어떤 용어를 어떤 의미로 써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당혹스러움도 있었을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 명시된 교육 내용을 체계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하여 교과서를 개발, 편찬하고 이를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교과서는 국가의 교육과정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인 동시에 학생들이 교과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교재로서 그 의미와 역할이 강조되어 왔다. 교과서는 학생들의 학습 교재이면서 교사들의 교수 도구가 되어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의 창구역할도 한다. 교과서는 학교교육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렇게 당연한 것을 R선생은 도움이 되었다며, 적어도 용어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었다며 고마워한다. 교과서가 있어서 고맙다니……너무 당연한 것을 새해 인사로 받으니 참 씁쓸하다. 타 교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대화내용이 아닌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극교육 분야에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교과서를 개발한 것은 2011년에 개정된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였다. 그러나 연극교육의 실기 부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연기’과목의 교과서가 개발된 것은 2015 개정교육과정에 들어와서부터이다. 그러니까 2018년 『연기』교과서가 초판 발행되기 이전에 연극교사들은 교과서 없이 교사 교수학습자료를 스스로 제작하거나, 시중에 나와 있는 연기 관련 서적을 참고로 필요한 부분을 편집하여 교재로 활용하여왔던 것이다. 자료 중에는 연극이나 연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도 있었을 것이고 내용의 깊이와 범위가 천차만별이라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구체적인 내용과 수준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도 컸을 것이다. 또한 자료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같은 내용을 설명하더라도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거나, 같은 용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자료를 만나게 될 때 어떤 용어를 어떤 의미로 써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당혹스러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의욕적으로 더 많은 자료를 찾아 자신의 판단에 객관적 근거를 세우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 되지만, 그 수고로움이 두려워 아예 그와 관련된 내용을 빼고 가르치는 경우가 생긴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되어 버린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용어는 필수인데 그동안 서로 용어 때문에 교사들은 얼마나 의견이 분분했을 것이며, 학생들은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선생님의 성향(?)에 맞추느라 얼마나 분주했을까?

출처: 픽사베이

상황이 이러하니 R선생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적어도 그동안 교육과정을 근간으로 교수학습자료를 스스로 제작하는 과정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하나의 용어를 두고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혼란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들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R선생이 전한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우리가 보통 장면 연기, 즉흥 연기, 대본 분석 등을 교수하고 학습할 때 흔히 많이 쓰는 말 중에 ‘주어진 상황’이 있다. 교과서에서는 “배우가 역할을 창조하면서 접하게 되는 모든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렇게 ‘주어진 상황’을 명확히 정의해 주니 21명이 넘는 교・강사 중에 이에 대해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적어도 다양한 교과 시험문제 발문에 등장하는 ‘주어진 상황’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며 웃음을 섞어 말한 적이 있다. 그렇구나!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용어는 필수인데 그동안 서로 용어 때문에 교사들은 얼마나 의견이 분분했을 것이며, 학생들은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선생님의 성향(?)에 맞추느라 얼마나 분주했을까?

우리 연극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극용어는 학자마다, 학교마다, 또 극단마다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고, 그 용어가 의미하는 바 역시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로 확정할 수 없다.

출처: 픽사베이

그러나 R선생의 고맙다는 말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연기』 교과서에서 제공하고 있는 연기 용어란 고작 몇 가지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집필 당시 교육과정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연기 용어를 수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필자 간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연극학계 내에서도 서로 합의되지 않는 용어가 수두룩한 데다 교과서에 수록되는 용어라는 점에서 부담감이 너무 컸으므로 필자끼리만이라도 서로 합의된 용어를 중심으로 수록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 교육을 하다보면 필수 용어들이 있는데 교과서에 수록되지 못한 용어들은 결국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의 몫으로 남겨 둔 것이다. 무책임한 태도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연극교육계의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학계에서 논의하거나 합의되지 않은 용어를 버젓이 교과서에 실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부끄럽고 미안하고 어깨가 다시 무겁다. 그리고 다급한 마음이 든다.

사실 『연기』 교과서에서는 몸을 이용한 연기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동작(몸짓)’과 ‘움직임’이라는 용어밖에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배우의 연기를 ‘대사’와 ‘동작’으로 크게 나누었을 때 동작은 몸으로 하는 연기 중 가장 큰 단위가 되는 것이므로, 이를 더 세분화하여 설명하려면 ‘움직임’ 이외에 더 많은 용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동작(몸짓)은 도구와 함께하는 움직임과 도구 없이 하는 움직임을 포함한 배우의 외적 표현”이라고만 설명하여 동작이 도구의 유무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눠질 수 있음을 설명하고, 그 구체적인 용어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마저도 동의하지 않는 학자나 현장 예술인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 연극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극용어는 학자마다, 학교마다, 또 극단마다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고, 그 용어가 의미하는 바 역시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로 확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과서이니까…..

몸으로 하는 연기를 설명하려면 얼마나 많은 용어가 필요한가, 또 얼마나 많은 용어를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담고 사용하고 있는가? 그러나 정작 교과서를 집필하려고 하면 어떤 용어를 사용하여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개념을 세워줘야 하는지 막막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빠른 시일 내에 연극학계와 연극계가 함께 우리의 용어를 정리하는 연구를 착수하길 간절히 바란다.

출처: 오세곤 외, 『연기』, 서울특별시교육청, 2018.

2021년 새해 첫 날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2022 국가 교육과정 개정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과정이 또 개정될 모양이다. 통상적으로 교육과정이 개정되면 그에 따라 교과서도 새롭게 개발하게 된다. 물론 연극교과 교과서들이 개발 대상 교과서가 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앞으로 있을지 모를 새 연극 교과서 개발에 대비하여 빠른 시일 내에 연극학계와 연극계가 함께 우리의 용어를 정리하는 연구를 착수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학생들이 선생님에 따라 눈치 봐 가며 선생님이 자주 사용하는 전용 용어를 골라 쓰는 풍경이 사라지길…….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대학에서 극단 현장으로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배웠던 연극용어를 환경에 따라 Reset하는 일이 없어지질…….

그래서 연극교육을 하는 후배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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