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人)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 임야비(tristan-1@daum.net)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트루기

덜 알려진 작곡가의 덜 알려진 파우스트 가곡을 소개해 본다. 독일의 작곡가 뢰베(1796~1869)의 작품 ‘괴테의 파우스트에 의한 9개의 노래’다.

<Johann Carl Gottfried Löwe (1796~1869)>

뢰베는 400여 편의 가곡과 17개의 오라토리오, 6개의 오페라 그리고 다수의 실내악을 작곡하며 ‘북독일의 슈베르트’라고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작곡가의 이름만이 독일 가곡사(史)에 희미하게 표기되고 있다.

<파우스트 비극 제2부>

덜 주목받는 작곡가를 굳이 소개하려는 이유는 뢰베가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집중했던 ‘파우스트 비극 1부’보다는 ‘파우스트 비극 2부’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연극 무대에서도, 문학적 언급에서도 파우스트 1부가 2부보다 훨씬 인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심지어는 1부의 내용 – 그레트헨의 비극이 파우스트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지난 1년간의 연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우스트와 관련된 음악들의 90% 이상이 ‘비극 1부’의 텍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파우스트 비극 2부는 전체 파우스트 총 12,111행 중 7,499행을 이룬다. 즉 비극 1부가 38% 정도고, 비극 2부가 62%의 분량이다. 비단 분량뿐만 아니라 스케일에서도 1부를 압도한다. 무대는 인간의 세상을 넘어 신화와 황제의 세계로 무한히 확대되며, 파우스트는 직접 치세를 하기도 한다. 바이마르의 재상이었던 괴테는 확대된 공간 위에 자신의 깊은 철학을 마음껏 펼쳐 놓는다. 하지만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잦은 장소 변화와 공상적인 전개 때문에 1부 보다는 비극성의 밀도가 떨어지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9:1의 스코어는 좀 지나치다.

덜 주목받는 작곡가가 비교적 덜 주목받는 텍스트를 사용해 덜 주목받는 음악을 만들었다. 이 세 가지의 ‘덜’이 발생시키는 ‘마이너의 무게’가 있다. 이 무게는 파우스트 전체를 이해하고, 비극 2부의 무대 연출을 하려는 연출가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

<뢰베의 괴테 가곡 목록 표지 – 우측 상단에 12~20번까지가 파우스트 가곡이다>

뢰베가 괴테의 텍스트를 이용하여 작곡한 가곡의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대부분이 시(詩)에서 따온 것이며, 빌헬름 마이스터에서 인용한 텍스트들도 많다. 파우스트와 관련된 가곡은 총 9개로 묶어 놓았으며 앞의 2개는 비극 1부이고, 뒤에 7개는 비극 2부이다. 비극 1부에서 차용한 텍스트는 너무나도 유명한 ‘물레 앞의 그레트헨’과 ‘성벽 안의 그레트헨’이다. 이는 ‘2인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슈베르트 편’ 4월호와 5월호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유명 작곡가 슈베르트의 유명한 음악과 잊힌 작곡가 뢰베의 유명하지 않은 음악과의 비교 감상을 추천해본다. 세밀하고 세련된 청각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뢰베의 ‘괴테의 파우스트에 의한 9개의 노래’ 중 비극 2부에 해당하는 음악>

비극 2부에 해당하는 7개의 노래는 곡의 내용과 성격상 다시 4곡과 3곡으로 나눌 수 있다. 첫 4곡은 모두 1막 초반에 대거 등장하는 인물들 중 아리엘(정령), 어머니, 나무꾼, 술주정뱅이의 대사에 음악을 붙였고, 뒤의 3곡은 중 후반부에 등장하는 망루지기 ‘린코이스’의 운문 대사를 음악화했다. 그래서 첫 4곡은 극 중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한 특징적인 멜로디에 중점을 두었고, 뒤의 3곡은 린코이스의 입을 빌려 흘러나오는 괴테의 철학에 중점을 두었다.

<Ariel>

첫 곡 ‘꽃잎이 봄비 내리듯 모두의 머리 위에 흩날릴 때’는 비극 제2부의 장대한 시작을 알리는 첫 대사를 텍스트로 사용했다. 이 운문은 공기의 정령 아리엘(Ariel)이 지쳐 누워 있는 파우스트 옆에서 하프의 반주에 맞춰 읊는 일종의 ‘서곡’ 역할을 한다. 첫 장면의 배경은 쾌적한 장소(Anmuthige Gegend)로 지정되어 있는데, 뢰베는 흐르는 듯한 피아노 멜로디를 반복하여 1부의 비극에 지친 파우스트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사한다. 참고로 괴테 파우스트의 아리엘은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의 에어리엘과 같은 정령이다. TTIS 2014년 3월호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12) 템페스트’에서 에어리엘 음악을 소개한 바 있는데, 독일 작곡가(뢰베) – 독일 극작가(괴테)의 정령과 영국 작곡가(본 윌리엄스) – 영국 극작가(셰익스피어)의 신비로운 정령 묘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좌) 나무꾼들 우) 주정뱅이.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1884-1950)이 그린 파우스트 2부의 삽화>

제2곡~제4곡은 모두 1836년에 작곡되었다. 뢰베는 2부 1막의 가장무도회 장면에 등장하는 수많은 군상 중 세 명을 꼽아 노래로 만들었다. 각각은 노처녀 딸을 재촉하는 어머니의 시름, 노동이 가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무꾼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조건 퍼 마시는 술주정뱅이의 특징을 매우 잘 포착했다. 곡의 템포와 내용을 강조하는 성악의 멜로디는 빼어나지만, 너무 단순한 피아노 반주가 인물의 입체감을 편평하게 만들어 버리는 점이 못내 아쉽다.


<헬레나에게 선물을 바치는 망루지기 린코이스.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1884-1950)의 그린 파우스트

제5곡~제7곡은 3막과 5막에 등장하는 망루지기 린코이스의 운문을 가사로 쓴 노래로 일명 ‘망루지기 린코이스(Lynceus) 3부작’으로 불린다. 괴테는 자신의 희곡 속 조연 배우의 이름을 신화 속 이아손 원정대에서 조타수를 맡았고, 눈이 밝아 ‘천리안’이라고도 불렸던 ‘메세니아의 린케오스(Lynceus of Messenia)’에서 따왔다. 괴테가 신화 속의 천리안을 끌어들이면서까지 작명에 공을 들인 이유는 관객에게 던질 묵직한 메시지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눈 멀기’ 다.

제5곡 ‘헬레나 발치에 있는 망루지기 린코이스’에서는 ‘미모’에 눈이 먼다. 뢰베는 격조 있는 피아노 반주 위에 열정적인 성악 도입부를 얹어 경국지색 헬레나의 미모를 예찬한다.

제6곡 ‘헬레나에게 보물을 바치는 린코이스’에서는 ‘돈’에 눈이 먼다. 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부분은 헬레나에게 보물을 바치며 은근슬쩍 자신의 재력을 과시한다. 두 번째 부분은 보물을 얻기 위해서 살육도 서슴지 않던 잔인함을 행진곡(alla marcia) 리듬에 맞춰 위풍당당하게 뿜어낸다. 마지막 부분은 앞에서 내비친 자신의 재력과 권위로 헬레나의 환심을 사보려 패를 던지며 무려 7분에 달하는 대곡을 마무리한다. 가곡보다는 음악극에 가까운 작품으로, 파우스트 2부를 연출할 계획이 있는 관계자분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다.

마지막 제7곡 ‘파우스트 탑에서 노래하는 린코이스’에서 망루지기는 시력을 잃어가는 파우스트의 눈을 대신한다. 린코이스는 시력이 아닌 예지력으로 가장 먼 곳이자 가장 가까운 곳인 파우스트의 심연을 꿰뚫는다. 극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파우스트의 마지막 대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직전에 나오는 이 운문은 거대한 몰락을 준비하는 마지막 제의(祭儀)다. 뢰베 역시 이 점을 간파했다. 덧없는 고양이 숭고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멋지게 표현했다. 단, 이 멋진 장면을 피아노 반주가 아닌 오케스트라 반주로 설정했다면 더 멋진 효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푸념을 해본다.

이상으로 덜 알려진 작곡가가 비교적 덜 읽는 텍스트에 곡을 붙인 잊힌 음악을 알아보았다. 왠지 이 소개 글도 곧 사라질 거 같지만, 눈 멀지 않은 그 누군가에게 읽히고 들려지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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